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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보령제약그룹회장 자서전/23/소비자가 다가오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다가가라!

광고가 계속되고 용각산이 차차 대중 속에 알려지면서 ‘순수 생약’이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한 또 다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생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했던 당시 소비자들은 용각산이 생약제제이고 특히 가래나 기침, 천식 등에 특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용각산을 마치 생약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한참 자신만만해 있던 영업사원들은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애써 일구어 온 밭에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새 제품을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영업에 고전을 면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나 또한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마냥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는 일에 착수했다.
우선 당시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외제에 대한 선호도가 유별났던 당시 소비자들의 의식 저변에는 국산품의 질이 외제보다 뒤떨어진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용각산의 경우에도 무턱대고 속단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원료나 기술이 똑같은 데도 단지 국내에서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품질을 의심하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그 뿌리 깊은 병폐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업계의 견제와 질시 또한 미처 예기치 못한 수준이었다. 용각산은 특이한 제품이었고, 그만큼 용각산의 출현은 당시 국내 제약업계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약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업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 했다. 그러다보니 용각산은 곧바로 신생회사인 보령의 성장 가능성으로 여겨졌고, 그런 까닭에 우리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그만큼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용각산 발매를 둘러싼 이런 저런 구설수는 생산 단계에서부터 판매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사전에 시장분석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함으로써 장차 내게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으로 포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포장은 상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물의 질적인 측면을 떠나 일단 상품에 대한 욕구와 선호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포장인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첫 번째로 발매된 용각산은 미흡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첫 생산품 5만갑을 모수 수거했다. 그리고는 용기를 새로 제작하게 하고 포장지의 인쇄도 새롭게 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알루미늄용기와 인쇄상태를 점검했다.
여러 차례 시험제작과 재작업이 계속되면서 용각산의 포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제품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 들게 되자, 수거한 용각산을 모두 새 용기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번거러움과 금전적 시간적 손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못이 있다고 판단이 선 이상, 그러한 눈앞의 손실을 염두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편 난산 끝에 거듭 태어난 용각산이 당당히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새로운 전략을 생각했다.
약국의 기피현상이 계속되고 판매가 부진하자 나는 보다 적극적인 제품홍보 방안을 강구했다. 소비자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발 벗고 나서서 소비자 쪽으로 다가가는 도리밖에 더 있는가.
나는 1967년 후반부터 시음용 제품을 통해 전국에 걸쳐 대대적인 샘플링을 하도록 지시했다. 미세 분말 제제인 용각산의 가루모양이 일제에 비해 거칠다는 등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이 때 1회용 샘플링을 제작하는 데만도 엄청난 양의 용각산이 소비되었다.
샘플링의 효과는 가히 극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근거없는 불신으로 일관했던 소비자들이 대규모 샘플링 과정을 통해 조금씩 인식을 바꾸어갔고, 마침내 용각산 발매 6개월을 넘기면서 제형(劑型)이나 품질, 약효 등에서 일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파격적인 광고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쓴 광고비가 당시 매출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으니까 실로 파격적인 모험이었다. 엄청난 광고비 지출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경리부장이 ‘광고비를 줄이지 않으면 망한다’고 울상을 짓기도 했지만, 나는 광고 전략을 고집했다.

'청소부는 이제 없습니다'라느 다소 이색적인 형태의 광고를 하고 있는 용각산.


<140년의 전통!
가래 기침 해소라면......지금 곧 용각산
가수 교사 성대 보호에도 용각산>

이런 문구로 시작되는 최초의 신문 광고에는 특히 ‘가수, 교사 성대 보호에도 용각산’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이 약의 고객층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특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광고가 계속되고 용각산이 차차 대중 속에 알려지면서 ‘순수 생약’이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한 또 다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생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했던 당시 소비자들은 용각산이 생약제제이고 특히 가래나 기침, 천식 등에 특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용각산을 마치 생약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신문보다 라디오를 통한 캠페인 광고 프로그램이 더욱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용각산이 판매에 호조를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는 신문에 이어 곧바로 라디오에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침 황금시간대에 캠페인식으로 편성된 이 광고의 주된 내용은 ‘가래와 기침 그리고 해소, 천식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래나 기침 정도는 아주 가벼운 질환으로 여기고 있었다. 특히 겉보기에는 상처를 입거나 급성질환에 걸려야 약을 찾을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가래나 기침, 천식이 다른 합병증이나 중증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약국을 찾았다. 라디오를 통한 우리의 캠페인은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고 ‘기침과 가래가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질환의 하나’임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쨌든 신문과 라디오 광고 등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실제로 당시 용각산 홍보에 투입된 광고액수가 단일품으로는 국내 최고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용각산이 업계의 질시를 받고, 약국의 기피대상이 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누구보다 용각산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비록 그 일이 막대한 투자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해도 묵묵히 내가 가진 확신을 전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언젠가는 업계나 소비자들도 마음을 열고 용각산의 약효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 나는 새로운 판촉 방안을 시행하도록 했다. 약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들어오는 영업사원들을 격려하면서 “다음 번 방문 때는 약품 판매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고 대신 최신 의학뉴스나 업계 정보 등을 전해주고 오라”고만 일렀다. ‘우리 물건 사달라’고 성가시게 매달리는 것보다 그것이 오히려 더 당당하고 적극적인 무언(無言)의 세일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계산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영업사원들로서는 팔아야 할 용각산 얘기는 제쳐두고 말 그대로 ‘돈도 안 되는’말만 하고 오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원들은 내 지시를 잘 따라 주었고, 얼마쯤 지나자 용각산 얘기를 먼저 꺼내는 쪽은 오히려 약사들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은 하나 둘 용각산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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