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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67/단칸 신혼 생활

아내가 보고싶어 점심시간은 집으로 달려가

9ㆍ28 수복 이후 국군이 평양을 거쳐 압록강가에 이르는 등 전세가 반전되면서 사회는 폐허 속에서나마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전주에서 1년을 근무한 뒤 1952년 10월 대전구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전국에 15개의 보건소와 수백 개의 보건진료소가 설치됐다. 미군정 하에서 처음 세운 서울시립보건소가 전쟁 중 파괴되는 등 의료시설이 부족해지자 전쟁 후 유엔의 지원으로 구호와 보건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에 보건소, 보건진료소를 설치한 것이다.

            
이 때 대전구호병원은 대전시보건소가 됐고 1953년 나는 대전시보건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해 지역 주민의 건강관리를 책임졌다. 대전시보건소는 대전시 은행동에 있었는데 유엔 지원 하에 미국식 예방의학제도를 도입해 예방접종, 모자보건, 전염병 예방 및 치료를 주사업으로 했다.

 

김희수총장은 천안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그리고 대전에 있는 동안 나는 인생의 가장 큰 중대사인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늘에 와서 친지들은 나에게 중매결혼이냐 연애결혼이냐 묻는 이가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중매 반, 연애 반이다. 처남이 의대 동기생이기 때문에 가끔 그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으며, 그때 우리는 오빠 친구와 친구 동생 사이로 대화도 자주 했으니 반은 연애라고 설명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대전보건소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산 철도관사에서 살던 처가가 대전으로 내려와 소제동 철도관사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내 처는 대전 제일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 내 나이는 27세, 처는 23세 때였다. 마침 장인께서 대전철도국에 계시다 천안보선소장으로 전근하셔서 천안에 계셨기 때문에 우리의 결혼식은 천안의 어느 교회에서 치렀다.

 

그때가 1954년 5월 1일인데 당시 결혼식 풍습은 신랑 신부 둘 다 꽃바구니를 든 2명씩의 들러리를 내세워 꽃잎을 뿌리며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신부가 면사포를 쓰고 입장하면 신랑이 면사포를 걷어 올려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잊고 그냥 서 있다가 주위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주례 선생님께서 결혼이란 이성지합(二性知合)이요 백복지원(百福之源)으로 부부간엔 사랑과 양보가 첫째 덕목이니 이를 실천하라던 말씀이 지금도 떠오른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여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몇 해 동안 대전에서 살았다. 신혼생활은 남의 집 문간방을 사글세로 얻어 시작했는데 단칸에다 부엌은 가마니로 가까스로 바람막이를 하고 있는 그런 집이었다. 우리 집은 옛날에는 지주 집안으로 부유했지만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모두 남의 땅이 되어버려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은 시골의 논 1.200평이 전부였다. 게다가 전후 모든 물자가 귀할 때였기 때문에 사과상자 하나도 소중했다. 사과상자는 책상 대용으로 쓰였다가 때로는 찬장 역할까지 해 매우 유용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신부인 아내가 보고 싶고, 점심도 먹기 위해 꼭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신혼살림이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월급을 타면 시장에 나가서 작은 찬장과 그릇 등 살림살이를 사는 일이 큰 기쁨이었다. 내가 모은 돈으로 새살림을 장만하는 일은 말할 수 없는 보람을 안겨 주었다. 나의 첫딸인 용애도 이곳 대전에서 출생하였고, 나의 처는 아기를 키우며 없는 살림을 꾸려 가느라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늘 상냥한 모습으로 나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해 주었다.


나는 주말이면 고향 양촌에 자주 가곤 했다. 아내와 함께 가는 때도 있었고 나와 아내가 교대로 부모님을 찾아뵙기도 하였다. 집에 들를 때마다 어머님은 나를 한결같이 반겨주셨으며, 집에 돌아갈 때는 당신께서 손수 농사지으신 곡식과 잘 익은 과실을 여러 개의 주머니에 싸 주셨다. 동구밖까지 나오시면서 잘 가지고 가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머니의 이같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가지고 다니기 귀찮은 생각에 마지못해 들고 왔다. 이제 생각하니 나의 철없던 마음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자식에게 무엇이든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어버이의 마음,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이 그때 그 주머니 속에 가득 차 있었음을 생각하며 새삼 어머니의 정(情)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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