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AI 기반 마약류 관리체계 구축..일탈엔 엄정 처벌, 중독자엔 치료 지원 병행하고
미국의 오피오이드 참사, 반면교사 삼아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하반기 마약류 안전관리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징벌적 과징금 도입,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 출범, AI 기반 상시 감시체계 구축, 신분위장수사 도입 등 지금까지 나온 대책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이다. 최근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프로포폴, 펜타닐, 졸피뎀, 케타민 등 의료용 마약류를 겨냥한 집중 관리 방안이다. 마약 문제는 더 이상 특정 범죄조직이나 일부 중독자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과 약국, 동물병원 등 합법적 유통체계 안에서 시작되는 의료용 마약류의 유출과 오남용이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미국은 의료용 진통제 오남용이 국가적 재난 수준의 '오피오이드 위기(Opioid Crisis)'로 번졌다. 1990년대 후반 제약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느슨한 처방 관행 속에서 옥시코돈 계열 진통제가 무분별하게 처방됐고, 결국 수십만 명이 중독과 과다복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뒤늦게 처방 모니터링 프로그램(PDMP)을 전면 확대하고, 의료진의 처방 이력을 실시간 추적하며, 불법 처방 의료기관에 대한 대규모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법무부는 오피오이드 남용 사태와 관련해 대형 제약사와 유통업체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배상금을 부과했다. 의사 면허 취소와 형사처벌도 잇따랐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 실패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역시 의료용 마약류를 '통제약물(Controlled Drugs)'로 지정해 국가 차원의 전산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상 처방이 발견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하며, 지역별 책임관(Controlled Drugs Accountable Officer)이 의료기관의 처방 패턴을 상시 감시한다.
호주는 실시간 처방 모니터링 시스템인 '세이프스크립트(Safe)'를 운영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순간 과거 처방 내역과 중복 투약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특정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며 마약성 의약품을 처방받는 이른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도 이제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식약처가 추진하는 K-NASS 구축과 DUR 연계는 미국과 호주의 실시간 감시체계와 유사한 방향이다. AI를 활용해 365일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의료쇼핑을 실시간 차단하겠다는 계획은 분명 진일보한 정책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약류 범죄의 핵심은 '적발되더라도 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에 있다. 따라서 감시체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처벌의 확실성이다. 이번에 추진되는 징벌적 과징금과 명단공표 제도는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의료용 마약류 불법 유출은 단순 행정위반이 아니다. 병원과 약국, 동물병원에서 새어 나온 마약류는 결국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범죄의 출발점이 된다. 의도적 불법 유출이나 허위 처방, 대리 처방, 허위 재고관리 등은 면허와 직결된 중대 범죄로 다뤄야 한다.
의료계 역시 이번 대책을 규제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의료용 마약류는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관리 대상이기도 하다. 일부의 일탈을 방치할 경우 전체 의료계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미국이 오피오이드 위기를 겪은 뒤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중독을 단순 범죄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식약처가 치료·재활 연계, 직업재활 확대, 청년 예방교육 강화 등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약과의 싸움은 단속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철저한 감시와 무관용 원칙, 그리고 재활과 사회복귀 지원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번 하반기 대책이 단순한 계획 발표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AI 감시망은 시작일 뿐이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근절하기 위한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