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대가는 背信이었다."2027년도 의원급 요양급여비용(수가) 협상 결렬 이후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입장문의 첫 문장은 의료계의 현재 심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협상에서 의료체계 안정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계약을 수용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해와 보상이 아닌 더 큰 경영난과 외면이었다는 것이 의료계의 인식이다.
실제로 개원가는 지금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인건비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임대료와 관리비 부담도 커졌다. 필수의료와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상당수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의협이 "일차의료 포기 선언"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까지 사용한 이유 역시 이러한 절박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급속한 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 역시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정부는 "재정 여건상 한계가 있다"고 답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 자신의 논리만 반복할 뿐 상대방의 절박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이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신뢰의 붕괴다. 의협이 느끼는 배신감의 본질은 단순히 인상률 숫자에 있지 않다. 현장의 어려움이 협상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박탈감, 이미 결론이 정해진 듯한 협상 구조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가깝다.
정부 역시 의료계를 협상 파트너가 아닌 설득 대상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의료계 또한 국민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의 현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수가협상은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협상이 아니다. 국민이 안정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협상 결렬을 두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머물러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자세다.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말하는지 귀 기울여야 하고, 의료계는 건강보험 재정이 안고 있는 부담을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가결정체계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실제 진료 원가와 의료물가, 인건비 상승분을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재정 결정 과정과 협상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제도는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갈등을 반복할 뿐이다.
의협은 "인내의 대가는 배신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참고 견뎌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한 호소도 담겨 있다.
정부도, 의료계도 이제는 그 목소리를 감정적 대립의 언어가 아닌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대화뿐이다. 협상은 끝났지만 대화까지 끝나서는 안 된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의료계는 다시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