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영칼럼/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 개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면 백신 개발에 수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안전성과 효과를 갖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공급하며 의학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팬데믹 이후 세계는 mRNA 기술을 코로나19에만 머물지 않고 독감, RSV, 대상포진, 암 치료백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분야가 바로 인플루엔자 백신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매년 항원 변이를 일으킨다. 현재 사용되는 계란 기반 백신은 유행할 바이러스를 미리 예측해 생산하기 때문에 실제 유행 바이러스와 차이가 발생하면 예방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해마다 백신을 맞아야 하고, 변이가 심한 해에는 예방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mRNA 인플루엔자 백신이다.
최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이지원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Nature Immunology에 발표한 연구는 이러한 가능성을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mRNA 백신은 기존 분할백신보다 더 강한 항체를 유도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까지 인식하는 광범위한 항체 반응을 형성했다. 특히 림프절 배중심(Germinal Center)에서 B세포의 진화가 약 6개월까지 지속되면서 항체의 다양성과 면역 기억이 더욱 향상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항체 수치가 높아졌다는 의미를 넘어, 향후 출현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에도 대응할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범용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의 핵심 기전을 사람에게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
세계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 성공을 발판으로 mRNA 독감백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모더나는 후기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코로나19와 독감을 동시에 예방하는 복합백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 역시 독감과 암 백신 등 차세대 mRNA 플랫폼 확대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노피와 GSK 등 글로벌 백신 기업들도 자체 mRNA 기술 확보와 공동개발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이미 '누가 먼저 시장을 선점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상용화 단계에서는 뒤처져 있다. 코로나19 이후 여러 바이오기업과 연구기관이 자체 mRNA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지만 대부분 초기 연구 또는 비임상·초기 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술력은 빠르게 축적되고 있지만 생산시설, 대규모 임상 경험, 투자 규모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최근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정부는 팬데믹 이후 백신 주권 확보를 국가 전략으로 제시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국내 신약 개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혁신 신약의 신속 개발과 규제 지원 확대를 예고했다. 백신 역시 이러한 지원 정책의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mRNA 백신은 기초과학과 임상, 제조공정, 품질관리, 규제과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성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융합 산업이다. 대학 연구실의 우수한 논문이 실제 국민이 접종하는 백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 역량, 정부의 규제 지원, 병원의 임상시험 수행 능력이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이번 고려대 연구 역시 해외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우리 연구진의 기초연구 역량이 이미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연구를 제품화하는 산업 생태계다.
백신 산업은 단순한 의약품 시장이 아니다. 국가 안보이자 미래 성장동력이며, 팬데믹 시대의 필수 전략산업이다. 코로나19 당시 우리는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공급망에 의존해야 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다음 팬데믹에서는 같은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mRNA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은 독감 예방을 넘어 국내 mRNA 플랫폼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향후 신종 감염병 백신과 암 백신 개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국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수한 연구성과를 논문에서 끝내지 않고 산업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 기업의 과감한 투자, 대학과 병원의 연구 역량이 하나로 이어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도 글로벌 mRNA 백신 시장의 주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