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가 다시 짜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제약업계가 또 한 번 ‘혁신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제네릭(복제약) 중심 성장 전략이 한계에 직면하고 정부의 약가 절감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은 단순한 명예 인증을 넘어 기업 경쟁력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고 새로운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상대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총점 100점 만점 중 65점 이상을 획득하면 인증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한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 개편을 계기로 신규 신청 기업뿐 아니라 과거 인증 심사에서 탈락했거나 인증 유지에 실패했던 기업들의 재도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왜 다시 주목받나…약가 인하 시대 핵심 경쟁력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정부가 연구개발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약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도입한 제도다.
인증 기업에는 △건강보험 약가 산정 과정에서의 우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참여 시 가점 △정책금융 지원 △세제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제약업계가 이번 인증 개편에 큰 관심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약가 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제네릭 약가 관리 강화, 약가 사후관리 확대, 사용량-약가 연동제 등 다양한 약가 절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 충격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을 경우 혁신 신약 개발 기업으로서 정부 지원 정책의 우선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도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은 이제 단순한 정부 인증이 아니라 약가 정책 변화 속에서 기업 가치를 지키는 중요한 방어 수단”이라며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핵심 경쟁력이 됐다”고 말했다.
--- '65점 이상’ 절대평가 시대 개막…신청 기업 증가 전망
이번 개편의 핵심은 평가 체계의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평가 항목을 정비하고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비율, 임상시험 수행 실적, 의약품 수출 성과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특히 인증 기준을 ‘65점 이상’으로 명확히 제시하면서 기업들이 사전에 인증 가능성을 판단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상대평가 방식에서는 일정 기업만 선정되는 구조로 인해 경쟁이 치열하고 결과 예측이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혁신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면 제한 없이 인증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신청 기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R&D 투자 기준 상향…‘진짜 혁신기업’ 선별한다
정부는 인증 기회를 확대하는 대신 연구개발 역량에 대한 기준은 더욱 강화했다.
개정 기준에서는 의약품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 비율 요건이 기존보다 상향 조정됐다. 이는 단순 매출 성장보다 신약 개발과 기술 혁신에 실제 투자하는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 임상 개발, 기술수출 등 실질적인 혁신 성과가 부족한 기업은 인증 유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높은 한미약품, 유한양행, GC녹십자,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보령, 동아에스티 등 기존 혁신형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망 안정화·원료의약품 자급도 평가 강화…‘제약주권’ 반영
이번 개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요성이 커진 ‘제약주권’ 확보도 주요 평가 기준으로 반영됐다.
새롭게 강화된 평가 항목에는 원료의약품(API) 공급 안정화 노력, 필수의약품 생산 및 공급 역량, 글로벌 공급망 대응 능력 등이 포함된다.
이는 정부가 단순히 연구개발 투자 규모뿐 아니라 국가 보건안보에 기여하는 기업을 우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리베이트 기업에 엄격한 잣대…준법경영이 당락 변수
이번 혁신형 제약기업 개편에서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준법경영과 리베이트 검증 강화다.
복지부는 의료인 대상 부적절한 경제적 이익 제공 등 행정처분 이력을 인증 심사에 보다 엄격하게 반영할 방침이다.
과거 일부 제약사들은 의료인 대상 리베이트 문제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취소되거나 연장 심사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내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강화와 윤리경영 체계 구축을 인증 확보의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이번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누가 도전하나…종근당·휴온스 등 30여개사 준비
이번 제도 개편을 계기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과거 인증 유지에 실패했거나 신규 진입을 노리는 기업들이 새로운 평가 기준에 맞춘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종근당, 휴온스 등 약 30여 개 제약사가 이번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획득을 목표로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준법경영 체계 정비 등 내부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근당은 과거 의료인 대상 부적절한 경제적 이익 제공 문제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유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대표적 사례다. 이후 내부 준법 시스템 강화와 윤리경영 체계 개선에 집중해 왔으며, 이번 개편에서 강화된 평가 기준에 맞춰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휴온스 역시 전문의약품 사업 확대와 연구개발 투자 강화, 글로벌 사업 확장을 통해 혁신형 제약기업 진입 기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밖에도 다수 중견 제약사들이 절대평가 전환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인증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준혁신형 기업 지원 논의도 관심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을 위한 성장 단계별 지원 방안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상당수 중견 제약사들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글로벌 진출 성과를 기반으로 향후 혁신형 기업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 역시 혁신형 기업과 비인증 기업 간 격차를 완화하고 국내 제약산업 전반의 혁신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 체계 마련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연말 인증 결과가 제약업계 판도 바꾼다
업계는 올해 혁신형 제약기업 심사가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절대평가 도입으로 신규 신청 기업이 늘어나고, 기존 인증 기업의 유지 심사와 탈락 기업들의 재도전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심사는 단순한 인증 절차를 넘어 향후 국내 제약산업 정책 방향과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이제 신약 개발 역량뿐 아니라 제약주권, ESG, 준법경영까지 평가하는 종합 산업 경쟁력 인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올해 발표될 혁신형 제약기업 명단이 향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 구도를 바꾸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