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수술에서 혈액 공급을 담당하는 하장간막동맥(IMA)을 어느 위치에서 묶을 것인지를 놓고 이어져 온 ‘고위결찰’과 ‘저위결찰’ 간 논쟁에 임상적 판단 근거를 제시한 국내 다기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배기범 교수를 비롯해 칠곡경북대학교병원 박준석 교수, 화순전남대학교병원 김창현 교수 등 호남·충청·영남 지역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K-CROSS’ 연구팀은 두 결찰법 사이에 문합부 누출률과 수술 후 합병증 측면에서 유의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외과 분야 국제학술지 ‘JAMA Surgery’ 최근호에 게재됐다.
직장암 수술은 암 조직을 제거한 뒤 남은 장을 다시 연결하는 문합 과정을 거친다. 이때 연결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장 내용물이 새는 ‘문합부 누출’은 가장 우려되는 합병증 가운데 하나다.
문합부 누출이 발생하면 환자의 회복과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추가 치료나 재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후 항암치료 일정과 환자의 장기적인 예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이를 줄이기 위한 안전한 수술법 선택이 중요하다.
외과계에서는 직장암 수술 때 하장간막동맥을 시작 부위에서 묶는 고위결찰과 왼결장동맥을 보존하면서 그 아래에서 묶는 저위결찰 가운데 어느 방법이 문합부 누출을 줄이는 데 유리한지를 놓고 수십 년간 논쟁을 이어왔다.
저위결찰은 왼결장동맥을 보존해 문합 부위의 혈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제시돼 왔다. 반면 고위결찰은 혈관 처리가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장의 길이를 충분히 확보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실제 수술 결과에서 어느 방법이 문합부 누출을 더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K-CROSS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19년 7월부터 2024년 8월까지 국내 7개 대학병원에서 임상 1~3기 직장암 환자 314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전향적 무작위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환자들을 저위결찰군과 고위결찰군으로 무작위 배정하고 수술 후 문합부 누출과 합병증 발생 여부를 비교했다. 전체 등록 환자 가운데 293명의 자료가 최종 분석에 포함됐다.
분석 결과 저위결찰군과 고위결찰군 사이에서 문합부 누출률과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수술법이 환자의 장기적인 기능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1년 후 배뇨 기능과 성기능, 삶의 질도 비교했지만 두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고위결찰과 저위결찰 모두 최소침습 직장암 수술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특정 수술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개별 환자의 해부학적·임상적 특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연구는 국내 7개 대학병원이 5년에 걸쳐 공동으로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배기범 교수는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 설계부터 최종 결론 도출까지 참여 기관 연구진의 의견을 조율하고 공통된 연구 방향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준석 교수도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 방향 설정을 함께 이끌었으며, 김창현 교수는 제1저자로 임상자료 분석과 연구 결과 정리를 담당했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의료기관의 수술 경험과 전문성을 공유하고 표준화된 연구 절차를 적용해 전향적 무작위 임상시험을 완성했다.
배기범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한 가지 수술법을 모든 환자에게 무조건 적용하기보다 환자 개개인의 혈관 구조와 종양 위치, 장의 긴장도와 혈액 공급 상태, 집도의의 숙련된 경험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정밀 수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두 수술법 모두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된 만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고위결찰과 저위결찰을 둘러싼 오랜 논쟁을 해소하고, 직장암 환자의 상태에 맞는 수술법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임상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