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산업은 이제 정부가 단순히 ‘수출을 지원하는 산업’으로만 바라볼 단계를 넘어섰다.2024년 화장품 수출액은 102억 달러에 달했고 세계 3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국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도 한국이 2024년 18억 달러 규모로 1위를 기록했다. K-뷰티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출산업 가운데 하나다.
이런 시점에서 서영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법 개정의 핵심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화장품 안전관리와 규제 지원, 국제협력 등을 위해 5년마다 ‘화장품관리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이를 협의·조정하기 위한 ‘화장품관리협의회’를 두도록 한 것이다.
法 하나가 산업의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개정은 적어도 화장품 정책을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단기 행정에서 벗어나 안전관리·산업경쟁력·글로벌 규제 대응을 하나의 중장기 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식약처가 이미 2026년 정책설명회를 통해 제조·유통관리 기본계획, 국제 화장품 규제조화, 안전성평가제도, 표시·광고 위반사례 관리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법정 기본계획은 이러한 개별 정책들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내야 한다.
문제는 ‘기본계획에 무엇을 담느냐’다
5년마다 기본계획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기본계획이 ‘K-뷰티 수출 확대’, ‘글로벌 경쟁력 강화’, ‘소비자 안전 확보’와 같은 선언적 문구를 반복하는 행정계획에 머문다면 법을 개정한 의미는 크게 줄어든다.
앞으로 화장품관리기본계획에는 적어도 안전관리, 제조·품질관리, 표시·광고, 유통·온라인 판매, 해외 규제 대응, 중소기업 지원, 소비자 피해 예방, 위반업체 사후관리가 하나의 관리체계로 연결돼야 한다.
특히 메디팜헬스뉴스가 최근 식약처의 2026년 상반기 행정처분 자료를 제약·바이오, 화장품, 의약외품, 의료기기 등으로 나눠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문제를 앞으로의 기본계획 수립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화장품 분야 행정처분을 단순히 ‘몇 개 업체가 몇 건의 처분을 받았다’는 통계로 끝낼 것이 아니라, 어떤 위반이 반복되고 왜 같은 유형의 위반이 계속 발생하는지를 정책적으로 분석해야 한다.행정처분은 규제행정의 끝이 아니라 다음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적발→처분→종결’ 방식에서 벗어나야
현재의 행정관리는 위반행위를 확인하면 영업정지, 판매정지, 광고업무정지 등의 처분을 내리는 방식이 중심이다.
물론 법 위반에는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행정처분 자료를 장기간 축적해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왜 비슷한 위반이 반복되는가.
규정을 몰라서인지, 책임판매관리 체계가 허술해서인지, 제조·품질관리 문제인지, 표시·광고 기준이 복잡해서인지, 온라인 유통구조의 변화 때문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중소 화장품 업체들은 해외 규제뿐 아니라 국내 안전성평가, 표시·광고, 품질관리 등의 규제 변화까지 개별 기업이 모두 따라가기 쉽지 않다. 식약처 역시 올해 화장품 안전성평가제도의 안착과 국제 규제조화 지원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며, 개별·일회성 지원보다 산업 전체의 대응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방향을 밝힌 바 있다.따라서 향후 기본계획에는 행정처분 데이터의 상시 분석체계를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체별 처분 건수만 집계할 것이 아니라 위반 유형, 반복 위반 여부, 기업 규모, 제조·책임판매 단계, 온라인·오프라인 유통경로 등을 분석해 ‘화장품 규제 위험지도’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반복 위반 분야에 대해서는 집중점검을 하되 단순 처벌에 앞서 교육·컨설팅·사전점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규제행정의 방향도 바꿀 필요가 있다. '적발하고 처벌하는 식약처’에서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식약처’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품관리협의회’, 정부 부처만 모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설치될 화장품관리협의회의 구성이다.
화장품 정책은 식약처 하나만으로 완성하기 어렵다.
현재도 해외 인증과 금융·수출 지원, R&D와 인력 양성, 한류 연계 마케팅, 상표권과 위조화장품 대응 등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다. 식약처 역시 이러한 지원정책의 분산에 따른 비효율을 지적하며 범부처 협력체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해왔다.
때문에 협의회에는 식약처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부, 외교부, 관세청 등 관련 정부기관의 실질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기관들만 모여서는 부족하다.
화장품 제조기업과 책임판매업체, 중소기업, 수출기업, 소비자단체, 피부·독성·안전성 전문가, 법률·규제 전문가, 유통·온라인 플랫폼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 중심으로 구성돼서는 안 된다.
K-뷰티의 저변에는 수많은 중소·벤처 화장품 기업과 제조업체가 있다. 규제 대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목소리가 협의회에 직접 전달돼야 한다.
동시에 산업계 의견만 지나치게 반영돼 안전규제가 산업지원 논리에 밀리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산업진흥과 안전관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관계가 아니다.안전해야 수출할 수 있고, 신뢰받아야 K-뷰티 브랜드가 오래간다.
행정처분 결과를 매년 기본계획에 환류시켜야
필자는 화장품관리기본계획에 하나의 장치를 반드시 넣을 것을 제안한다.
바로 ‘규제성과 평가 및 행정처분 환류체계’다.
식약처가 매년 화장품 분야 행정처분을 유형별로 분석해 협의회에 보고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다음 연도 정책과 교육·점검계획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특정 표시·광고 위반이 계속 증가한다면 무조건 단속인력을 늘리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규정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온라인 광고환경 변화에 기존 지침이 적합한지, 영세업체가 규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안내가 이뤄지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반복 위반 업체에는 당연히 보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다수 업체가 동일한 규정을 반복해서 위반한다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 전달체계에도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그것이 데이터에 기반한 행정이다.
5년짜리 계획을 ‘살아 있는 계획’으로 만들어야
화장품 산업은 5년이면 시장 자체가 바뀔 수 있는 산업이다.
유통채널이 달라지고 소비 트렌드가 바뀌며 새로운 원료와 기술이 등장한다. AI를 활용한 광고와 마케팅도 이미 현실이 됐다. 해외 규제 역시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5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되 이를 5년 동안 그대로 유지해서는 곤란하다.5년 기본계획-연도별 시행계획-매년 성과평가-행정처분 분석-다음 연도 정책 보완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필요하다.
화장품관리협의회도 1년에 한두 번 모여 보고자료를 듣고 끝나는 형식적인 위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안전관리, 글로벌 규제, 중소기업, 소비자 보호 등 분야별 실무분과를 두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화장품법 개정은 K-뷰티가 성장한 뒤 뒤늦게 제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을 국가가 어떻게 관리하고 뒷받침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률에 ‘기본계획’과 ‘협의회’라는 두 단어를 넣었다고 정책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수출 100억 달러 시대의 K-뷰티에 필요한 것은 규제를 줄이는 정부도, 규제를 늘리는 정부도 아니다.
산업이 세계시장으로 나가기 전에 위험을 찾아주고, 기업이 규정을 위반하기 전에 알려주며, 문제가 반복되면 그 원인을 데이터로 찾아 제도를 고치는 정부다.
이번 법 개정을 계기로 식약처가 구축해야 할 화장품 관리체계도 바로 그 방향이어야 한다.K-뷰티의 다음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파느냐’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믿을 수 있게 관리하느냐’에서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