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이 군의관·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 현실화 요구를 ‘돈벌이’ 문제로 표현한 유영하 국회의원의 발언에 반발하며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황 회장은 3일 오전 9시 국회 1문 앞에서 ‘복무 현실화를 돈벌이로 매도한 유영하 의원 규탄한다’, ‘전문성 향상을 위한 시간을 경제적 이득으로 왜곡하지 마라’, ‘망언 즉각 철회하고 젊은 의사들에게 공개 사과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뒤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유 의원이 지난 8월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관·공중보건의사 복무기간 단축 요구와 관련해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해 복무 기간 단축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발언한 데 따른 것이다. 유 의원은 의료계가 국회에 제도 문제를 설명하는 정책 활동을 두고도 “로비가 심하게 들어오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의사가 단지 돈을 버는 근로자 같으면 저희가 존중을 안 하죠”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 같은 발언이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의 헌신을 폄훼하는 것은 물론 근로의 가치를 비하하고 의사와 근로자를 갈라놓을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황 회장은 “군 장병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군부대에서 복무해 온 군의관들이 소명의식을 내팽개쳤습니까. 의료취약지역 주민 곁을 지키며 지역 공공의료를 담당해 온 공중보건의사들이 돈만 좇았습니까”라고 반문하며 “현역병보다 현저히 긴 기간 동안 국가의 부름에 응해 복무한 젊은 의사들의 희생이 정말 ‘돈벌이’라는 말로 평가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신성한 근로의 가치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며 직업에 따라 다르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냐”며 “유 의원의 발언은 젊은 의사들의 헌신과 명예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비하하고 근로자와 의사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황 회장은 “근로자들 역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와 땀의 농도는 직업에 따라 다르지 않다”며 “자의적인 논리로 젊은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경제적 탐욕으로 매도하거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계가 요구하는 복무기간 현실화는 경제적 이익이나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정한 조건에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복무기간 현실화를 요구하는 의사들은 특별한 혜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군 복무를 회피하겠다는 것도, 경제적 이득을 얻겠다는 것도 아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정한 조건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의사에게 시간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새로운 의학 지식과 술기를 익히고 환자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안전하게 치료할 역량을 쌓는 시간이며,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군의관 들어오는 인원보다 나가는 인원 441명 많아…공보의도 감소
황 회장은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젊은 의사 개인의 소명의식이나 희생에 의존해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인이 이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며 “군 의료에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복무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국가와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가 제시한 수치에 따르면 올해 군의관 편입 인원은 304명인 데 비해 전역 인원은 745명으로, 나가는 인원이 새로 편입되는 인원보다 441명 많다. 올해 신규 의사 공중보건의사는 98명에 그쳤으며 전체 의사 공중보건의사도 593명으로 감소해 600명선 아래로 내려갔다.
황 회장은 유 의원이 언급한 복무기간의 ‘점진적인 감축’에 대해서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수급 위기는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라며 “지금은 점진적인 감축을 논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가 국회를 찾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로비’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황 회장은 “의료계가 국회를 찾아 현장의 문제를 설명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로비가 아니다”며 “국회의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입법과 정책을 심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채 그 책임을 의사 개인의 헌신과 희생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목소리 경청하고 잘못된 제도 바로잡아야”
황 회장은 의료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을 정책 협의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접근도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정책을 함께 만들어야 할 핵심 당사자”라며 “의료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전문가를 배제하고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의사에 대한 비난과 낙인으로 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려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또다시 의사를 공격하고 희생양으로 만드는 정치가 아니다”며 “의료계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는 책임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영하 의원실을 방문해 ▲군의관·공중보건의사 복무기간 현실화 요구와 근로의 가치를 ‘돈벌이’로 규정한 발언 철회 ▲군의관·공중보건의사와 의료계 및 근로자에 대한 공개 사과 ▲의료계 정책 활동을 ‘로비’로 표현한 발언 철회 ▲‘점진적인 감축’ 주장 철회와 복무기간 현실화 즉시 추진 등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황 회장은 “인체에서 흘러나오는 땀방울의 농도는 모두에게 동일하며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실현하는 숭고한 가치”라며 “묵묵히 환자 곁에서 본연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의사들을 다른 국민과 갈라치기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유영하 의원이 해당 발언을 철회하지 않고 공개 사과를 거부한다면 서울특별시의사회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및 근로자의 명예와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가능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3일 성명을 내고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해 “현재 군의관·공보의 수급 붕괴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의 잘못된 제도 설계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의 직업윤리 문제로 전가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유 의원은 지난 8월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관·공중보건의사 복무기간 단축 논의와 관련해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해 복무기간을 단축해 달라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고, 이러한 요구를 국가가 받아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보의 신규 편입 98명…이미 수급체계 흔들려”
협의회는 군의관과 공보의가 줄어드는 근본 원인은 의사의 ‘소명의식 부족’이 아니라 현행 제도가 변화한 병역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협의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공보의 신규 편입 규모는 2015~2022년 연간 500~800명 수준에서 2024년 249명, 2025년 250명으로 줄었으며 2026년에는 98명까지 감소했다.
반면 의대생의 현역병 입대는 2020년 150명에서 2024년 1363명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8월까지 2838명에 달했다고 협의회는 밝혔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앞으로 군의관과 공보의 공급 감소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 협의회의 주장이다.
협의회는 복무기간 격차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현역병은 18~21개월을 복무하는 반면 군의관과 공보의는 군사교육 기간을 제외하고도 3년을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긴 복무기간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처우상의 이점이 있었지만 현역병 처우가 개선되면서 이러한 차별성이 사실상 사라졌고, 의과대학 내 여학생 비율 증가에 따른 병역 대상 의사 감소 등의 요인까지 겹쳤다고 분석했다.
협의회는 “젊은 의사들이 18개월가량의 현역병 복무를 선택하는 것은 ‘소명의식의 상실’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 놓은 제도적 유인구조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복무기간 그대로 두면 앞으로 누가 군의관·공보의 지원하나”
협의회는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군의관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박했다.
유 의원이 복무기간을 급격히 단축할 경우 필요한 군의관 숫자를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 우려했지만, 오히려 현재와 같은 복무기간을 유지할 경우 앞으로 군의관과 공보의로 복무할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의대 재학생의 99.0%가 군의관·공보의 지원 감소 원인으로 현역병 대비 긴 복무기간을 지적했고, 복무기간이 24개월로 단축될 경우 공보의 복무 의향은 94.7%, 군의관 복무 의향은 92.2%까지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복무기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군의관·공보의 공급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 군의관 숫자부터 다시 따져야”
현재 군의료 인력의 배치 방식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안과 전문의가 세극등 현미경이 없는 부대에 배치되거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X-ray 장비가 없는 곳에서 일반진료를 하고, 외과 전문의가 수술과 단절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사례가 있다며 군의관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인력 배치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의 군의관 편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필요한 인력 규모를 산정할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편제를 먼저 정비하고 의료인력의 전문성에 맞게 군의료체계를 개편한 뒤 실제 필요한 군의관 규모를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의회는 의사의 직업윤리와 국가의 병역제도 설계 역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에게 소명의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병역 선택보다 현저히 긴 복무기간을 감수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선택하지 않는 의사를 돈을 좇는 사람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복무기간 단축 넘어 군의료·지역공공의료 구조개혁 요구
협의회는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을 단순히 24개월로 줄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군의료와 지역공공의료 시스템의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군의관과 공보의가 맡고 있는 불필요한 행정·비진료 업무를 대폭 줄이고 군사작전상 반드시 필요한 군의관을 제외한 인력의 운영체계를 재설계하는 한편, 군의료와 지역공공의료의 중복된 자원과 인력을 조정하고 민간의료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병역의무를 활용해 의사 인력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군장학생 제도 등을 확대·개편한 ‘국방 트랙’과 ‘지역 트랙’을 구축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장학금과 합리적인 처우, 경력개발 기회를 제공해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군의료와 공공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도 유 의원에게 군의관·공보의 수급 문제를 젊은 의사들의 ‘돈’과 ‘소명의식’ 문제로 연결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국회와 정부를 향해서도 복무기간 현실화와 함께 군의료·지역공공의료의 통합 운영, 비효율적인 군의관 편제 개편, 국방·지역 트랙 구축, 처우 개선 등을 포함한 제도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협의회는 “젊은 의사들의 희생을 강요해 유지되는 제도는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의사의 소명의식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군의료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