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0일 일요일, 제19회 가평 자라섬 전국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송파마라톤클럽도 이날 대회에 참가했다. 모처럼 야유회도 겸하기로 해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아침 6시 가평을 향해 출발했다.
행사는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됐다. 날씨가 참 좋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여름 더위도 한풀 꺾이고 하늘은 맑았다. 가을 문턱에 들어선 가평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었고 산자락은 조금씩 가을빛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북한강과 자라섬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달리기 대회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평 자라섬 전국마라톤대회는 북한강변과 자라섬 일원을 달리는 가평의 대표적인 스포츠 행사다. 마라톤은 기록과 순위를 겨루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운동이다. 힘들 때 서로 격려하며 같은 결승점을 향해 달린다는 것도 마라톤이 가진 매력이다.
필자가 송파마라톤클럽에 가입한 것은 벌써 20여 년 전이다. 60세를 넘긴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다음 날부터 내 체력에 맞춰 석촌호수를 한 바퀴씩 천천히 뛰었다. 몸 상태가 좋은 날에는 두 바퀴도 돌았다. 집이 송파여성문화회관 근처라 집에서 출발해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면 약 4km, 두 바퀴를 돌면 약 6.5km가 됐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어느덧 20년을 넘겼다. 그동안 수십 차례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코스도 뛰고 10km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80을 넘으니 주변에서 장거리 마라톤은 몸에 무리가 될 수 있다며 걷기를 권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집 근처 올림픽공원을 자주 걷는다.
수영장이 있는 체육관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성내천을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면 대략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물가에서는 두루미와 청둥오리를 볼 수 있고, 공원 산자락에서는 느닷없이 꿩이 날아와 멋진 자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어디에서 내려왔는지 조그마한 고라니 한 마리가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걷다 보면 배드민턴체육관 주변에서 여러 사회·정치적 주장을 내건 집회 참가자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뒤섞인 도심 한가운데서도 나는 묵묵히 내 걸음을 이어간다. 이제 내게 걷고 달린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루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 됐다.
이날 송파마라톤클럽 일행을 태운 버스는 오전 8시께 자라섬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장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마라톤 동호회들의 텐트가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 반갑게도 송파마라톤클럽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참가자들은 출발에 앞서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며 각자의 레이스를 준비했다.
대회는 하프와 10km, 5km 등 세 코스로 진행됐다. 하프코스는 자라섬을 출발해 가평고등학교와 오목교를 지나 자전거길을 달린 뒤 반환점을 돌아오는 코스였고, 10km는 가평교와 보납로 등을 거쳐 다시 자라섬으로 돌아왔다. 내가 선택한 것은 5km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았다. 숨이 차면 걷고,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뛰었다. 반환점에 이르자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는 시원한 생수 한 병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물 몇 모금을 마시니 갈증도 가시고 다시 힘이 생겼다.
예전에 황영조 선수가 석촌호수 서호 수변무대에서 달리기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건강을 위한 달리기라면 거리에 욕심을 내지 말고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춰 천천히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특히 몸이 풀리면서 속도를 내고 싶어질 때 오히려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대회에 나갈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이날도 ‘천천히, 천천히’를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결승점까지 이제 1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역시 사람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5km였지만 기분은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82세인 내가 내 두 발로 출발선을 떠나 5km를 달리고 다시 결승선까지 돌아왔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나이를 먹으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게 된다. 몸이 무거워지면 마음도 덩달아 게을러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몸이 허락하는 한 전국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5km 정도의 짧은 코스에는 참가해볼 생각이다.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도, 누구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몸을 움직이고 나 자신에게 아직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물론 나이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첫째다.
대회를 마친 송파마라톤클럽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강원도 춘천 소양강변으로 향했다. 달리기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진짜 야유회였다. 제기차기 대회를 벌여 상품도 받고, 제비뽑기를 하며 푸짐한 선물도 나눠 가졌다.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새벽 6시 버스에 몸을 싣고 시작한 하루였다. 자라섬의 가을바람을 맞으며 5km를 달렸고, 오랜 마라톤 동료들과 소양강변에서 웃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여든둘에도 달릴 수 있다는 것, 함께 달릴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이번 야유회를 겸한 가평 자라섬 전국마라톤대회는 그렇게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