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총장 자서전/72/가훈과 종교

  • 등록 2012.05.31 19: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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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



요즘 어느 가정에 가나 크고 작은 가훈이 문패처럼 걸려 있다. 한때 한 가정 한 가훈 갖기 운동을 벌였던 여파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어 혈통과 사회 규범, 가정 내의 생활 규범과 가족의 화평 등을 강조해 왔다. 가훈은 한 가족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도리와 삶의 철학을 나름대로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가훈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선진 서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 주변에선 우리 집 가훈이 어떤 것인가 궁금해 하는 이가 많다. 가장인 내가 나름대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기에 거창한 가훈을 내걸고 있는 줄로 착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선조께서 거유(巨儒)이기 때문에 공맹(孔孟)의 어록(語錄) 같은 걸 인용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총장의 장모가 세운 대전 보문산에 있는 고

촉사.

 

예를 든다면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이라는 난해한 구절 같은 것 말이다. “하늘을 향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식으로……. 그도 아니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같은 보수적 내용일까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지 중에는 내가 일찌감치 유학을 했기에 서구의 어록을 내건 것으로 짐작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 가훈은 지나치게 평범하다. 어떤 가정에선 가훈이 거창한 내용을 담고 있어 마치 애국 단체나 관청의 청훈(廳訓)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문제는 얼마만큼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훈을 말하기 전에 평소 나의 생활신조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항상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며 자식들에게도 이같이 당부해 오고 있다.

 

사람은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철저한 유교 집안에서 엄하신 아버님의 가르치심과 인자하신 어머님의 사랑을 받아 성장하였으며 별다른 굴곡 없이 순탄하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생애도 열심히 일하여 보람을 찾고 공익사업인 육영에 전력을 쏟을 각오이다. 이 같은 나의 뜻을 받들어 자손 대대로 실천해 주기 바랄 뿐이다.


그래서 굳이 가훈이라고 내세울 건 없지만 다음과 같이 나의 생활신조를 집약한 생각들을 자식들에게 강조해오고 있는 터이다. 정직ㆍ성실하라, 근검절약하라,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 열심히 일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라는 정도이다. 나는 자식들과 자리를 같이 할 때면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첫째는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 둘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셋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학교 교육도 어렵지만 가정교육 또한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혈통이 좋고 생활 여건이 나무랄 데 없는 집안에도 가끔 이단적 문제아는 있기 마련이다.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패륜아, 사회적으로 깜부기(黑麥) 같은 존재가 도처에 횡행하는 세상이다. 이런 데 비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순종적이며 착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점만은 안심을 한다.


인간에 대한 분류와 평가의 척도는 동서양이 다를 바가 없어 대체로 이분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사회에는 ‘돈키호테’형과 ‘햄릿’형으로 구분해 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돈키호테는 저돌형, 다시 말하면 다혈질의 전형이다. 원래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걸핏하면 칼을 뽑아드는 체질로 심지어 풍차와 대결한다며 달려드는 인물로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보다 한 수 위에 속하는 과격파이다.

 

반면 ‘햄릿’형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이럴까 저럴까 사안을 놓고 망설이며 “그것이 바로 문제로다” 라고 고민하는 체질을 말한다. 이는 ‘세익스피어’의 작중 인물로 서양에선 그 영향을 받아 인간 유형을 두 가지로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양, 특히 한자 문화권은 어떠한가. 절대선(善) 아니면 절대악(惡)이라는 두 가지 형으로 파악해 온 게 사실이다. ‘착한 사람’과 ‘못된 놈’,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 ‘양반’과 ‘상놈’,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이분법 논리다. 소설이나 연극에서도 예외 없이 정직한(순정파) 사람과 배신자로 묘사된다.


세상이 수평 사회로 가면서 ‘제3 인간형’이 고개를 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웅’ 아니면 ‘초적(草賊)’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크게 선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중간형’, 즉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제3 인간형’이란 우리 자신들의 초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평범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턱없이 걸출한 인물이 되라거나 최고급, 특등 인물이 되기를 강조한 기억이 없다. 이를테면 협태산(挾泰山)을 하라거나 기개세(氣蓋世)의 틀을 기르라는 등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요즘 세상에는 남보다 튀어야  된다고 하지만 그러다보면 독불장군이 되기 쉽고, 남들과 화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평범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철학을 강조했기 때문인지 자식들은 평범하게 잘 자라왔고 객기를 부리거나 자기 능력 밖의 모험 따위를 하는 일이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어렵다지만 나는 자식들에게 자주 당부를 한다. 열매는 땀 흘린 만큼 거두는 법이며 남 앞엔 늘 겸손하고 내일 일은 오늘에 앞당겨 챙기라고 말이다. 또 만용보다는 겸손을, 남으로부터 무엇을 받기보다는 베푸는 쪽으로, 그리고 남의 잘못을 관용하면 사회생활에서 해를 보지 않는다고 늘 말해왔다. 우리 부부는 평소에 이와 같은 생활을 해오며 자식들에게 본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글로 씌어진 가훈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진정한 가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내가 사계(沙溪) 후손이라는 점을 앞세워 유교라고 단정하고 성균관이나 향교(鄕校)의 중책을 맡아 재정적 후원이라도 하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반면 의학계에선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 까닭은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연세대 출신인 데다 그 그늘에서 미국 유학까지 했으니 어김없이 기독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직방계(直傍系)가 거의 미국 유학을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모두 일리 있는 추정들이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불교에 무게를 더 얹고 있다. 나의 처가 독실한 불교 신도인 까닭에 실 가는 데 바늘 간다는 말처럼 ‘동반 신앙’을 가졌다 해서 누가 이를 나무랄 것인가. 이를테면 ‘부창부수(婦唱夫隨)’라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나의 불심(佛心)은 일찍부터 내 삶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나의 유난스러운 검소함과 부지런함이 바로 불심의 시작이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랄까? 나는 부모님의 검소함과 부지런함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어려서는 타지에서 유학하면서, 커서는 먼 이국 미국 땅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근검절약해야 했고, 특히 절대적인 고독과 싸워야 했다.

 

주위 환경에 얽매여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추슬러야 했다. 그러한 내핍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마치 수행(修行)하는 승려와 같은 자세로 공부에 전념했다. 숱한 유혹과 번뇌를 떨쳐 버린 석가의 미소에서 어려울수록 강인한 의지를 갖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 불교는 어느덧 내 삶의 일부요. 생활 철학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 푼의 돈을 벌어도 헛되이 쓰지 않고, 똑바로 정도를 걷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나는 자부한다. 내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도 신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모두 보시(布施)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 생각한다.

 

 베푸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인간을 교육하는 일도 보시가 아니겠는가. 눈이 멀어 흑암 중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유신의 광명을 찾아주거나, 교육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도록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일들이 이 세상의 고해(苦海)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편이라고 믿는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나의 열정과 나의 전 재산을 남을 치료하고 교육하는 데 보시하겠다고 서원(誓願)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아내를 따라 고촉사를 찾는다. 고촉사는 대전 보문산에 있는 사찰인데, 나의 장모님께서 세우신 절이다. 사정공원을 지나 산자락을 따라 좁은 계곡을 조금 오르다 보면 아담한 기도 도량인 고촉사에 닿는다. 사람들이 붐비는 이름난 사찰보다 조용해서 좋다. 보문산 시루봉(팔각정이 있음) 아래에 위치한 고촉사는 기도 도량으로 이름난 암자이다.


사람 속에서 부대끼다가 잠시 벗어나 고요한 자연 속에서 부처님께 기도하노라면, 잊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속세에서 묻혀온 때도 씻어내게 된다. 청정심(淸淨心)에 들어 깨끗이 나를 비워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날 내가 이만한 사업을 일으키고 커다란 과오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고촉사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장모님의 지극한 불심과 아내의 정성 어린 기도의 덕분이라 생각하여 늘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제 음력 초하루와 초파일에는 대전 보문산에 있는 고촉사를 찾아가 가족의 안녕과 우리 대학과 병원의 발전을 기도한 지도 30년이 되어간다.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촉사를 찾아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릴 것이다.

 

김용발 기자 kimybc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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