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8 (일)

  • 구름많음동두천 3.2℃
  • 맑음강릉 8.4℃
  • 연무서울 3.8℃
  • 구름많음대전 5.2℃
  • 흐림대구 3.7℃
  • 구름조금울산 8.5℃
  • 맑음광주 7.2℃
  • 구름조금부산 8.6℃
  • 맑음고창 9.6℃
  • 맑음제주 12.2℃
  • 흐림강화 2.3℃
  • 흐림보은 3.2℃
  • 구름조금금산 5.9℃
  • 맑음강진군 8.3℃
  • 구름조금경주시 6.7℃
  • 구름조금거제 7.6℃
기상청 제공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02/약(藥)과의 첫 인연

대창약방(大昌藥房). 약과의 첫 인연이 시작된 곳



"간혹 형이 잠시 외출을 해서 나 혼자 약방을 지키는 때면 마치 나 자신이 훌륭한 약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 짐짓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나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32년 1월 6일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 죽청리에서 3남 1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 죽청마을은  작은 산골이었다.

아버님은 전형적인 선비기질을 지닌 분으로 대를 물려 내려온 적지 않은 논밭에 농사를 짓고 있어서,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집안 살림이 그리 궁핍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웅천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져 살림이 어렵게 되었다. 아버님이 전답을 팔아 양조장을 인수했는데, 애당초 선비 기질만 지녔을 뿐 사업에는 경험이 없던 아버님이었기에 곧 실패를 하고 만 것이었다.

한번 기운 가세는 쉽게 되살아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를 비롯한 우리 형제들은 항상 배고픔을 느끼며 자랐다.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특히 산길을 따라 10리나 멀리 떨어진 학교를 오가는 동안에는 배가 고파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때도 많았다.

그 즈음 나와 나이 터울이 컸던 형(김영제:金永濟)이 흐트러진 가세를 수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 방안이 바로 약국개업이었다. 웅천면 신작로 변에 단층 양철집을 얻어 문을 연 형의 대창약방(大昌藥房). 그 곳이 바로 나와 약과의 첫 인연이 시작된 곳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거의 매일같이 쪼르르 약방으로 달려가 진열대에 놓여진 약품들을 구경하곤 했다.
비록 몇 안 되는 약들인데다 그나마 모양새나 품질이 조악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약들이 바로 사람들의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린 내 눈에는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대견스러운 것들로 보였다.

나는 여러 종류의 약들이 제각기 어떤 치료 용도로 쓰이는지 꼬치꼬치 캐물어서 때론 형을 귀찮게 하기도 했다. 특히 간혹 형이 잠시 외출을 해서 나 혼자 약방을 지키는 때면 마치 나 자신이 훌륭한 약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 짐짓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약업(藥業)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나는 서울로 올라 와 숭문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 때 거처로 정한 곳이 집안 형(김인호 : 金仁浩)이 운영하고 있던 약국 2층 다다미방이었다. 후일 백제약국 자리가 된 종로 5가의 홍성약국(鴻城藥局)이 바로 그 곳이었다. 집안 형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틈틈이 가게에 나가 약국 일을 거들었다. 비록 약품상자를 나르거나 사소한 심부름을 하는 정도였고, 잘 해봐야 값을 외워 둔 단순한 약들을 파는 정도였다. 그러나 약을 접하는 내 마음가짐만은 옛날 대창약방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약품의 종류나 오가는 손님이 그만큼 많아서 내 호기심이나 궁금증도 그만큼 커졌고, 약의 중요성이나 그 약을 만들고 지어 파는 일의 가치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요컨대 어린 시절의 대창약국이 내게 약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주었다며, 사춘기를 보낸 홍성약국은 내게 그 의미를 접하게 해준 셈이다.




배너
배너

배너

행정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의료·병원

더보기
광주응급의료지원단, ‘심정지 생존자 만남의 날’ 성료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용수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는 광주광역시 응급의료지원단이 지난 20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제1회 광주광역시 응급의료지원단 심포지엄’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기존의 의료진 중심 학술대회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눈길을 끌었다. ‘심정지 생존자 만남의 날’이라는 부제 아래,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환자와 그들의 곁을 지킨 가족, 그리고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구급대원과 의료진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꾸며졌다. 특히 이번 행사의 슬로건인 ‘심정지 후 생존, 그 너머’는 단순히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응급처치 단계를 지나, 생존자가 겪는 신체적·정서적 어려움을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완전한 일상 회복을 돕자는 의미를 담았다. 심포지엄에서는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순환기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다학제 전문가들이 참여해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후 관리 방안을 심도 있게 다뤘다. 주요 내용은 ▲심정지 후 생존, 그 너머(이병국 응급의학과 교수) ▲부정맥 의사가 들려주는 건강한 심장생활(이기홍 순환기내과 교수)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급성심근경색의 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