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중심을 잡아주고 신체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몸의 기둥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장기다. 따라서 척추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문제는 척추질환이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척추를 사용함에 따라 병이 계속 진행한다. 여기에 심한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 척추는 더 빨리, 더 많이 망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조기에 병을 발견해 치료하거나,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병의 진행을 예방하는 게 필요하다. 대표적인 척추질환에는 디스크, 협착증, 척추전방전위증이 있다. 이른바 3대 척추질환으로 불리는데, 이 중 척추전방전위증은 일반인에겐 상대적으로 생소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척추전방전위증이 동반 질환이 많고, 유형도 다양하며, 방치하면 하지마비 등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는 만큼 더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인천세종병원 이인경 과장(신경외과)은 6일 “척추전방전위증을 방치하면 디스크의 퇴행성 변성이 더 빨리 진행하게 된다. 협착증이 동반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척추체가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다른 인접 마디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며 “척추전방전위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등 사전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척추가 더 많이 망가지기 전에 제때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척추전방전위증이란?
척추전방전위증은 위 척추뼈가 아래 척추뼈보다 앞으로 밀려가면서 배 쪽으로 튀어나와 신경을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디스크가 받게 되는 비정상적인 외력이 증가해 디스크 변성이 빨리 진행하게 되므로, 대부분의 경우 디스크 질환과 동반하게 된다.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의 경우 척추협착증을 동반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척추전방전위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지난 2018년 17만여명에서 2022년 20만여명으로 5년 새 13% 증가했다. 또 최근 3년 동안(2020~2022년) 50대 이상 여성 환자가 남성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과장은 “척추전방전위증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인 경우, 척추협착증과 마찬가지로 퇴행성 변화로 결국 척추가 망가져서 생기는 질환”이라며 “고령화 사회 노령인구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퇴행성 척추질환인 협착증이 늘어나고, 또 협착증이 동반된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 환자도 같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폐경기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 척추전방전위증 유형…퇴행성, 협부형, 선천성 등
척추전방전위증은 앞서 언급한 퇴행성을 비롯해 협부형, 선천성, 외상성, 병적, 수술 후 전방전위증 등 유형에 따라 총 6가지로 나뉜다.
퇴행성은 말 그대로 추간판이나 후관절의 퇴행성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이 원인이다. 오래된 습관이나 자세와 연관이 깊다. 밭일하는 어머니들처럼 쪼그려 앉는 자세에서 더 진행한다.
이 과장은 “쪼그려 앉으면 척추뼈들이 앞은 좁아지고 뒤는 벌어지는 형태가 되는데,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전방전위증을 유발한다”며 “예컨대 네모난 상자들을 쌓아 놓고 경사지게 배치해 놓으면 상자들이 앞으로 기울어져 쏟아져 내려오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협부형은 척추분리증과 관련이 깊다. 척추분리증은 척추 후궁과 관절을 연결하는 부위(협부)에 결손이 있는 질환이다. 쉽게 말해 후관절과 후궁이 분리된 상태로, 척추체가 앞으로 밀려 나갈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협부형 척추전방전위증의 전 단계로 볼 수 있다.
척추분리증의 원인은 척추 협부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골절을 들 수 있다. 반복적인 과신전, 즉 허리를 펴는 운동과 관련된 체조, 다이빙, 배구 등 운동이 협부형 척추분리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척추전방전위증이 동반되기 전 상태면 척추분리증이라는 진단명이 붙게 되고, 전위증이 동반되면 척추분리성 또는 협부형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진단된다.
이 과장은 “모든 척추분리증 환자가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기에 진단해 척추를 바르게 사용하고 운동으로 척추 주위 근육을 강화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척추전방전위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천성 척추전방전위증도 다수 발견된다. 통상 척추전방전위증 환자 중 15%가 선천성으로 보고되고 있다. 조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흔한데, 종종 심각한 전위가 관찰되고 선천성 기형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보다 심각한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척추 수술 후 합병증이나 후유증으로 척추전방전위증이 생길 때도 있다.
통상 수술 부위는 기본적으로 유착이 진행된다. 유착은 우리 몸 스스로 공격을 당했다고 판단해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 조직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일종의 방어 작용이다.
결과적으로 척추 수술 부위가 유착되면서 상·하부 움직임이 많아지게 되고, 불안정한 힘이 더 가해지면서 척추전방전위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 척추전방전위증 증상
척추전방전위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단연 허리 통증이다. 다른 척추질환 증상과 마찬가지로 신경 압박이 동반하며 하지 방사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전위가 생긴 부분, 주로 5번 허리뼈와 천추 사이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해 점차 엉덩이와 허벅지로 저린 감각이 이어지게 된다. 특히 허리를 뒤로 폈을 때 증상이 심해진다면 척추전방전위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허리가 아프거나, 오래 서 있거나 많이 걷고 나면 허리 혹은 엉치뼈 부근, 무릎 밑이 아플 때도 있다. 허리를 반듯하게 편 상태에서 척추뼈를 훑으며 만져봤을 때 특정 부위가 툭 튀어나온 것처럼 계단식으로 층이 진 게 느껴지고, 그 부위를 눌렀을 때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증세가 악화하면 걸음걸이가 바뀔 수 있다. 다리 근육이 과하게 긴장돼 제대로 구부리기 어려워 뒤뚱거리면서 걷는 게 반복되면, 결국 체형까지 바뀌는 악영향을 준다.
척추전방전위증이 아주 심각한 경우 또는 협착증이 심하게 진행한 경우, 통증뿐 아니라 하지 마비 및 감각 이상, 대소변 장애까지 동반될 수 있다.
■ 척추전방전위증 진단 및 치료
척추전방전위증은 엑스레이(X-ray) 측면 검사로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협부 결손도 비스듬히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신경이 얼마나 눌려있는지, 동반 디스크 질환 및 협착증의 진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등 장치를 이용한 정밀검사를 진행한다.
척추전방전위증은 척추가 밀려 나온 정도에 따라서 총 4가지 등급으로 분류한다.
세부적으로 하부 척추체를 기준으로 사 등분 해서 0~25%를 1등급, 25~50% 2등급, 50~75% 3등급, 75~100% 4등급이다.
일반적으로 2등급, 즉 ¼ 이상 전위된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한다. 다만, 무조건적인 수술이 아닌, 밀려 나온 정도, 환자의 증상 지속 기간, 영상소견과 환자 증상의 일치 여부, 보존적 치료 효과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비수술적 및 수술적 등 최종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척추전방전위증의 비수술적치료법은 신경 성형술과 풍선 확장술이 대표적이다.
신경 성형술은 주삿바늘이 달린 지름 1㎜, 길이 40~50㎝의 미세도관(카테터)을 고리뼈에 삽입해 디스크나 협착증이 신경을 압박하는 부위까지 도달시켜 유착방지 효소제와 항염증제를 주입, 통증을 유발하는 염증과 부종, 신경 주위 유착을 치료하는 시술법이다. 시술 전 과정은 실시간 영상 장비(C-Arm)로 확인한다.
풍선 확장술은 풍선 확장기능이 장착된 카테터를 신경 성형술과 같은 방식으로 환부에 접근, 풍선을 이용해 협착 부위를 확장시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풍선 확장으로 척추관을 넓혀준 뒤에는 역시 효소제와 항염증제를 주입해 염증과 부종 등을 치료한다.
척추전방전위증의 수술적치료법은 대표적으로 척추유합술(나사못 고정술)이 있다.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약해지고 흔들리는 척추 마디 마디를 나사못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통상 증상이 있는 척추전방전위증 환자의 10~15% 정도가 이 같은 수술적 치료를 받는다.
이 과장은 “많은 환자가 부작용이나 후유증 탓에 수술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술 중 감염, 출혈, 수술 후 나사못으로 인한 골절, 신경 손상 등 위험은 존재한다”며 “많은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병이 이미 많이 진행되고, 디스크 질환이나 협착증 등이 동반돼 보존적 치료를 못 하고 수술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만큼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척추전방전위증 치료에 있어 재활 운동도 중요하다. 비수술적이든 수술적이든 성공적으로 치료 받더라도 재활을 하지 않으면 재발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활의 목적은 기능 회복과 재발 방지에 있다. 무엇보다 통증 감소에 효과적이다. 대부분의 척추 통증 환자들이 올바르지 않은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증이 없어져야 자세와 신체 정열을 회복할 수 있다. 자세를 교정하면서 비정상적인 조직의 긴장을 풀어주면, 통증 감소는 물론 치료가 촉진되는 효과를 낸다.
재활 기간은 정해진 바 없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강도나 빈도, 횟수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인천세종병원 이인경 과장(신경외과)은 “운동이 부족하고 자세가 안 좋은 현대인, 폐경기 이후 근골격계가 약해진 중년여성, 노인 등은 척추전방전위증의 고위험군”이라며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비수술적 치료만으로도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소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척추 건강에 나쁜 생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