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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32/고향 논산을 선택하다

설립 결심하기까지 수년간 많은 고민과 번뇌의 시간 가져



/김희수총장 자서전/32/고향 논산을 선택하다

건양대학교의 설립은 5공화국 말인 1986년도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비서관이던 논산 출신 신극범(愼克範) 박사께서 고향에 전문대학을 세워 보라고 권유해서 시작되었다. 신 박사님은 이왕 중·고교를 세웠으니 대학을 운영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이셨다. 큰형님께 상의 드렸더니 가문을 위해 명예스러운 일이니 해보라는 말씀이 계셔서 서둘러 입지를 물색하는 한편 서류를 구비해 교육부에 신청을 했다. 당시 고향 선배이며 중학 선배인 서명원(徐明源) 장관께서도 적극 밀어주셨는데 대통령 결재 과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모처럼 희망을 갖고 추진했던 일인데 안 되자 실망이 컸다.


그러나 이듬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공주사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고, 논산에 4년제 대학을 허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입지 선정과 4년제 대학 유치에 나섰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결국 1988년 가칭 논산대학 설립 허가를 받아냈다. 전문대학을 신청해서 떨어졌는데 4년제 대학을 신청해서 되었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앞서 대학 설립을 결심하기까지는 수년간 많은 고민과 번뇌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세울까 한다는 생각을 처음 밝혔을 때 주위 사람들의 견해는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가닥을 잡기가 어려웠다. 찬성하는 쪽은 정석모 전 내무부장관, 서명원 전 문교부장관, 신극범 교문수석비서관, 나의 공주중학 동창인 안병석 군과 구본정 교장이었다. 반대하는 쪽은 나의 친인척 중에 많았다. 병원과 중고교 운영만으로도 벅찬 판에 일을 더 벌여서 어쩌자는 거냐며 걱정들을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좇다가 자칫 잘못하면 집토끼마저 놓칠 우려가 있다는 충고였다.

 

김희수 총장이 학생들의 스포츠향상을 위해 대학교 내에 설치한 인도어 골프장에서 골프연습을 하고 있다.


특히 나의 중학 선배지만 스승뻘 되는 신두영 선생님마저 그 골치 아픈 짓을 왜 사서 하냐며 반대편에 섰다. 신 선생님은 감사원장을 지내시고 현대판 ‘황 정승’으로 불리는 분이셨다. 원래 특별한 사명감이 있지 않고는 누구나 학원사업을 꺼리는데 요즘에는 학생 소요가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더더욱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철권을 휘두르던 전두환 정권에 이어 민주화를 표방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1980년대 말 대학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데모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이렇게 소란스런 대학을 무엇 때문에 세우려 하느냐는 걱정이셨다.


한편으로 내 나이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이미 환갑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나이에 새로운 일을, 그것도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도 승산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업에 뛰어들려는 데 대한 염려였다. 모두 고마운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반대했던 분이나 찬성했던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내 마음은 서서히 결정되고 있었다. 어차피 중고교를 세워 어느 정도 육영사업의 경험도 쌓였고 해서 내친 김에 고향 논산에 제대로 된 좋은 대학을 설립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팔을 걷고 나섰다. 나의 사백께서는 육영은 백년대계이니 그냥 밀고 나가라며 용기를 주셨고 그 말씀은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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