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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35/뜻 깊은 첫 입학식

첫 입시 400명 모집에 3천명 몰려와 7.5대 1의 경쟁률 보여

교육부로부터 정식으로 10개 학과에 400명 모집 정원의 건양대학 설립인가가 떨어진 것은 1990년 11월 28일이었다. 이미 준비팀이 가동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개교 준비를 서둘렀다. 개설학과는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경영학과, 경제학과, 수학과, 화학과, 전자계산학과,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식품공학과 등 10개 학과로 인문사회, 이공학 분야 등 기본이 될 만한 학과들을 골고루 개설했다.  

 


학생모집을 위하여 먼저 건양대학의 개교를 알리고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대전ㆍ충남 일대의 고등학교들은 물론 김안과가 위치한 서울 서남부, 경인지역 등에 집중하여 건양대학의 탄생을 알렸다. 취업이 잘되는 실용적인 학풍을 강조했다. 또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둥글둥글한 성격의 인재를 키우는 인성을 중시하는 대학임을 알리고 재단이 튼튼한 양심적인 대학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래도 막상 원서 접수를 시작했을 때 학생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이 신설대학으로서 이미지가 좋았던지 첫 입시에서 400명 모집에 3천명이 몰려와 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후 지원율에는 다소 기복이 있어 1994년도의 경우는 750명 모집에 19,438명이 몰려와서 25.9대 1이라는 전국 최고의 경쟁률을 올리기도 했는가 하면, 1999년도에는 3.2대 1로 가장 낮은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건양대학교 1991학년도 신입생 입학식 장면. 첫 입학식인데도 7.5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드디어 1991년 3월 2일에 400명의 학생과 25명의 교수, 10명의 직원으로 뜻 깊은 건양대학의 첫 입학식을 가졌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인가를 받고 새 교사를 신축, 신입생을 맞았을 때의 감회란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초대 학장은 충남대학교 총장직을 지낸 이창갑(李昌甲) 교수님을 모셨는데 성품이 인후하셔서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학사행정에도 밝으신 분으로 모든 일을 나와 상의해서 잘 처리하셨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경상학관 앞 광장에 모인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향해 나는 이사장으로서 건학 동기를 설명하고 지난 세대는 일차적인 명제가 민족자존(民族自尊)을 지키는 일이었으나 여러분은 세계 만방에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 학문의 전당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 각자의 장래와 국가의 명운(命運)이 달려 있기에 각자 분발할 것을 강조하며 첫째, 넓은 안목의 국제인이 될 것, 둘째,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것, 셋째, 높은 이상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이사장으로서 여러 학생들이 밤늦도록 불 밝히며 공부할 때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일 것도 아울러 약속했다.

 

 생기발랄한 신입생들이 활발히 캠퍼스를 오가는 가운데 하루하루 대학의 틀이 잡혀갔다. 나는 인성을 겸비한 지식인의 육성이라는 나의 건학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대학에서 두 가지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도록 했다. 첫째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예학연구원을 통해 도덕심과 예절을 체득시키는 인간교육이고, 둘째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완비하는 3C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3C교육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려면 ‘영어회화(Conversation)’ ‘컴퓨터(Computer)’ ‘자격증취득(Certificate)’이 절실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2학기부터는 인문과학연구소, 경영경제연구소, 자연과학연구소, 산업기술연구소, 식문화연구소 등 연구소를 설치하여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북돋아 주면서 대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그해 말에는 교육부로부터 정보관리학과, 경영학과(야간), 화학공학과, 전자계산학과(야간) 등 4개학과 160명의 학생을 증원받아 이듬해 신입생 모집은 560명으로 증가되었다.


1992년 개교 1주년 겸 이공학관과 기숙사 준공식을 맞았을 때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에 부딪혀 때론 밤잠을 설치고 고민도 했지만 지난날의 고충과 한가닥 성취감이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재학생 960명에 600명 수용의 기숙사를 보유하게 됨을 강조하고 앞으로 제2, 제3의 기숙사를 더 지어서 신입생의 80% 이상이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내빈께 그간의 협조와 격려에 고마움을 표하고 대학이 무엇을 축적하느냐에 따라 국력도 신장되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앞으로 우리 대학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학문의 전당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대학의 앞날과 관련하여 사회가 절실하게 바라는 의료계와 연관된 종합대학으로의 구상을 밝히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불과 몇년 뒤 현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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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허가 애로 해결 ‘원스톱 창구’…의약품 수출규제지원 사무국 가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회장 노연홍) 와 식품의약품안전처(오유경 처장)는 30일 의약품분야 수출규제 지원 및 수출기업 규제정보 제공 ·애로상담을 위한 ‘의약품 수출규제지원 사무국’을 공식 출범한다고 밝혔다. ‘의약품 수출규제지원 사무국’(이하 사무국 )은 우리 기업들이 국가별로 복잡한 허가 제도와 규제장벽을 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민-관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되어, 기업들이 의약품 수출국가의 인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외 인허가 사례와 허가제도 분석 ·제공, 규제 애로사항 상담, 수출국 규제당국과의 소통기회 마련 등을 통해 기업을 지원한다. 그간 협회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관계 부처 및 해외 규제기관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왔으며, 최근 2년간 200건 이상의 수출 규제 애로사항을 발굴·건의하는 등 업계를 대변하는 핵심 소통채널로 기능해 왔다. 특히 베트남·인도네시아·일본 등 주요 수출국을 대상으로 민관 합동 대표단 파견, 현지 규제기관과의 양자 협의 의제 발굴 , 인허가 제도 세미나 및 비즈니스 미팅 등을 진행하며 규제분야 지원 역량을 축적해 왔다. 협회는 수출허가지원 사무국 운영을 통해 기업의 수출 및 허가 관련 애로사항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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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영칼럼/ 숫자를 늘리면 의료가 해결된다는 착각 의사 수 증원 논쟁은 언제나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의사가 부족하니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부족한 것은 의사의 ‘수’가 아니라, 의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구분을 하지 않는 순간, 의사인력 정책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숫자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일본 의사인력 정책 분석 보고서는 이 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의사 수 증원과 감축을 반복해 온 국가다. 그리고 일본이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총량 증원은 쉽지만,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의사 수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의사가 필요한지를 먼저 묻는다. 의대 정원 조정은 정책 수단의 하나일 뿐, 정책의 중심이 아니다. 지역·분야별 의사 배치, 근무 여건과 처우, 교육과 수련 체계, 의료 전달체계 전반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총량 증원은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정책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정책 내용만의 변화가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일본의 의사인력 정책은 단일 부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