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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43/IMF를 경영하다

중부권 최대 규모, 최신 시설을 갖춘 병원



부지 선정에서부터 설계, 시공회사 선정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기고 막상 병원 신축이 현실화되기 시작하자, 2000학년도 신학기 전에 개원을 서둘러야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병원을 개원해야지만 2001년 제1회 졸업생 배출을 앞두고 교수 초빙에서 학생 실습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터였다.

 

개원 전 3~6개월의 시험운영기간을 감안해서 1999년 10월말까지는 공사가 어떻게든 완료되어야만 했다. 병원 설계를 1997년 5월에 끝마쳤으니 최대한 공사 기간을 짧게 잡아야 했다. 그래서 건축 허가 기간 동안에 시공회사를 선정하는 등 처음부터 시간에 쫓기며 공사를 추진해야 했다. 건축 공기를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는 계약 동시에 본 공사가 진행할 수 있도록 공사장 진입로 개설, 지하수 개발, 수목 제거 등 기초적인 작업을 사전에 마쳐야 했다.

 

광활한 부지 위에 최신시설을 갖춘 중부권 최대의 건양대학교병원의 신축공

사가 진행되고 있다.

 

막상 공사가 시작되고 보니 건축비 마련이 문제였다.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 병원 건립을 위하여 준비된 돈 이외에도 200억 원 정도 차입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거래 은행과 몇 달에 걸쳐 협의를 했는데, 그 결과 쌍방 간에 날인만 하면 대출이 이루어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은행의 대출 조건이 200억 원을 대출해 주는 대신 120억 원의 예금을 예치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과감하게 대출을 거부했다.

 

이렇게 공사비를 완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는 추진되어야 했고, 공사비 지불이 안 될 시에는 진행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준비위원들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의과대학 인가가 우리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흐뭇해 했으나 이때만큼은 의대 인가를 받지 않았던들 자금 조달 걱정은 없을 텐데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타 의대병원에 뒤지지 않는 멋진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불안감을 씻어낼 겨를도 없이 공사가 30% 정도 진행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대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IMF 사태가 터졌다. 국내의 각종 공사 현장이 중단되었고 많은 건설회사들이 도산하리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우리 병원 공사 현장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공사장 분위기는 공사 대금이 지불되지 않으면 그대로 중지할 것 같은 긴장된 상황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새벽 4시만 되면 공사장에 나가 현장을 샅샅이 둘러보고 추가 구상을 하곤 했는데, IMF로 인하여 공사 현장 인부들의 사기가 푹 꺾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 역시 이 국가적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사를 하고 있던 금호산업도 결제일이 되면 시간을 다투어 공사비를 받으려고 했다. 금호산업이 수주한 여러 곳에서 실제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다행히 금호산업 측에서 나를 믿고 잘 버텨주었고, 여러 하도급 회사들도 잘 견뎌주었다. 반면에 내가 그동안 비축해 놓았던 다소의 돈이 역으로 혜택을 보아 은행 대출을 쓰지 않고도 그 어려웠던 IMF를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예정되었던 대로 공사는 착착 진행이 되었고, 오히려 IMF로 건축비가 내려가면서 더 내실 있고 튼튼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대역사(大役事)가 마무리되면서 1999년 10월말 건양대학교병원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2만2천 평의 대지 위에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의 본관, 지상 1층 지하 1층의 별관(장례식장)이 들어섰다. 연건평 1만2천4백 평에 618병상과 700여 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까지 완벽하게 갖춘 병원이 준공된 것이다. 병원 규모나 시설 면에서 중부권 최대 규모, 최신 시설을 갖춘 건양대학교병원이 드디어 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병원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는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다 잊어버릴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좋은 병원을 짓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 주었던 준비위원들,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를 믿고 공사를 해주신 관계자들, 수많은 분들의 땀방울이 맺힌 고된 노력과 열성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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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영칼럼/ 숫자를 늘리면 의료가 해결된다는 착각 의사 수 증원 논쟁은 언제나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의사가 부족하니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부족한 것은 의사의 ‘수’가 아니라, 의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구분을 하지 않는 순간, 의사인력 정책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숫자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일본 의사인력 정책 분석 보고서는 이 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의사 수 증원과 감축을 반복해 온 국가다. 그리고 일본이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총량 증원은 쉽지만,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의사 수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의사가 필요한지를 먼저 묻는다. 의대 정원 조정은 정책 수단의 하나일 뿐, 정책의 중심이 아니다. 지역·분야별 의사 배치, 근무 여건과 처우, 교육과 수련 체계, 의료 전달체계 전반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총량 증원은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정책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정책 내용만의 변화가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일본의 의사인력 정책은 단일 부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