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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총장 자서전/61/공주중학교 시절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그 당시 행군을 통해 단련한 결과



공주중학교에 입학을 한 것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바로 이듬해인 1942년이었다. 일제시대 중학교는 오늘날 중·고등학교의 통합과정으로 운영되었다. 그때는 군청 소재지에 중학교가 없는 곳이 많아 중학교만 가도 유학으로 생각할 때였다. 그러니 당시 일류로 알려져 있던 대전중·공주중·강경상업·공주사범 등에 붙으면 온 동네가 경사 났다고 떠들썩했다. 금단추 뻔쩍이는 검은 교복과 교모를 쓰고 고향에 가면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우쭐해 하던 시절이었다.


공주중학교 교사는 시내 상단에 위치하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성공원과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제민천과 어울려 잘 짜여진 도시 형태는 지난날 충남의 도청 소재지였음을 일깨워 주었다. 공주는 거기에다 공주중학교·공주농전·공주여자사범·공주여자중·영명중 등 다른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중등교육기관이 집중되어 있어 교육도시로 각광을 받던 고장이다.

 

공주중학교 본관.


이름 아침이면 학생들이 시내를 가로질러 등교하는 활기찬 모습은 공주에서나 볼 수 있는 교육 도시다운 면모였다. 그러나 내가 중학에 다닐 때는 2차 대전 와중이라 중학교 교복은 마치 군복 차림과 같아서 학생이라기보다는 군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서슬을 세웠다. 본정통을 걸어 학교로 들어가다 보면 본관 2층 중심부에 부착된 교표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앞날에 희망을 비춰주는 듯했다.


교문을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조경(造景)이 눈에 들어오고 말끔히 단장된 2층 본관과 웅장한 모습의 과학관, 전교생이 들어가도 여유가 있는 강당이 있었다. 배수 시설이 잘 되어 비가 온 후에도 곧바로 운동할 수 있는 넓고 규격이 잘 짜여진 운동장과 그 전면에는 편히 앉아 관람할 수 있는 벚꽃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스탠드가 있었다. 그 담장 너머로는 기숙사가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는 등 학생들에게 진리탐구와 인격도야(人格陶冶)의 도장으로 손색없는 학교였다. 나는 이런 배움터에서 비록 전시의 제한적인 교육이기는 했지만 마음껏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같은 분위기도 잠시뿐 일본이 본격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교과 과정이 대폭 개편되면서 교련과 정신 강좌가 늘고 근로 동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을 석권한 일본군은 여세를 몰아 동남아의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폴 등을 차례로 점령해 가고 있었다.


야마시타(山下) 장군이 영군 ‘퍼시벌’사령관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자 일본인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마침내는 “성전(聖戰)을 완수하려면 학도들이 선봉에 서야 한다”고 몰아대는 바람에 학교는 흡사 병영과도 같았다. 연일 총을 메고 군사 훈련을 받거나 출정 군인(지원병)집의 모내기 돕기, 군수 공장에 가서 중노동 하는 일에 시달렸다.

 

부여 신궁(神宮) 부지 작업과 조치원역에 가서 군수물자 싣기, 대전 비행장 터 닦기에 동원되었던 기억들이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고달픈 근로동원에 불만을 품고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가 주동자들이 호된 벌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때 교육은 차선(次善)일 뿐 이른바 여름에 모서(冒署), 겨울엔 모한(冒寒) 훈련의 연속이었다.

 

요즘 학교생활에선 상상할 수 없는 극한 훈련이었다. 야간행군과 저녁식사 후엔 완전무장을 하고 운동장에 집합, 일장 훈시를 듣고 왕복 24km의 행군에 나서서 돌아올 땐 잠이 와 대열에서 눈을 감고 걷던 일, 다음 날 아침 부족한 수면을 채우느라 골아 떨어졌던 일, 부여 신궁을 짓는 데 땀깨나 흘렸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나마 하루 수업이 끝난 방과 후에는 운동장에 나가 각자가 자기 취미에 맞는 운동을 하며 몸을 풀 수 있었던 것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학교의 체육과목 중 단련(투기)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검도’요, 다른 하나는 ‘유도’로 둘 중 하나는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도관에선 매일 쿵쿵거리며 메어 꽂히는 소리와 시나이(竹刀)가 부딪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했다. 검도나 유도 중 택한 과목은 졸업할 때까지 해야 했는데 나는 유도부에 들어가 강당에서 다다미를 깔고 비지땀을 흘리며 엎치락뒤치락 단련을 하였다.


체육 종목엔 또 ‘철봉’과 ‘수류탄 던지기’ ‘총검술’ 등이 있었는데 나는 행군에 관한 한 단 한번도 남한테 뒤진 일이 없었다. 오늘날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그때 행군을 통해 단련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도리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행군은 학교―미나리광―산성공원―공동묘지―금강교 건너기가 주된 코스였는데 일본인 교사들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학생들을 들볶았다. 그중에는 한국인 교사도 시막스럽게(거칠고 사납게) 굴어댄 이가 있어 해방을 맞아 학생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근로 동원이나 훈련을 받다가 휴식 시간이 되면 오락으로 이어지는데 오락이래야 군가를 합창하는 게 고작이었다. ‘쟈바(인도네시아)는 상하(常夏)의 나라/ 남녘 나라 적도(赤道) 아래/ 밤하늘에 번쩍이는 십자성/ 아득한 조국이여/ 그날의 깃발이여/ 눈앞에 아른거린다’느니 「군함 행진곡」 「새벽녘에 전승을 비노라」 등 선동적인 것들이었다.


이는 일제의 광분상을 말해 주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더없이 고달픈 나날이었지만 그때는 온 민족이 시달리던 시대였다. 농사지은 쌀은 모두 군량미와 일본 본토인 몫으로 빼앗아가고 만주에서 들여온 콩깻묵〔大豆粕〕으로 연명하다 그나마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였다. 겨울엔 시래기를 삶아 먹고 봄엔 산나물과 아카시아꽃을 훑어다 메밀가루에 버무려 쪄 먹던 상황이었다.

 

젊은이는 지원병, 장년은 징용, 처녀들은 정신대로 줄줄이 끌려갔다.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남방을 석권하던 일본군이 차츰 전세가 불리해지자 농가의 수저·양푼, 심지어 놋쇠 요강까지 수탈해 갔다. 아녀자들에겐 아주까리 재배와 광솔 기름을 짜도록 강요, 그것을 기계와 비행기 기름으로 대용하려 했으니 당시 전세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야말로 압제와 빈곤의 일제 치하에서 굴욕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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