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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노재영 칼럼/ 항생제 내성이라는 '소리 없는 팬데믹',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연구팀이 최근 국가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사업(ASP)의 성과를 정리해 JAMA Network Open에 발표한 것은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이 항생제 내성이라는 구조적 위협에 대해 국가 단위 관리모델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항생제 내성은 이미 World Health Organization(WHO)가 지정한 10대 공중보건 위협 중 하나다. 2019년 전 세계에서 127만 명이 내성으로 사망했고,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에는 연간 1,0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더 이상 과장된 경고로 치부하기 어렵다.
문제는 한국의 현실이다. 2023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일일 항생제 사용량은 31.8로, OECD 평균 19.5를 크게 웃돈다. 사용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성 위험이 빠르게 축적된다는 뜻이다. 지금의 편의가 미래의 재앙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2050년, 암보다 무서운 ‘내성균의 습격’
항생제 내성은 단순히 약이 잘 듣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현대 의학의 토대를 뒤흔드는 위기다.
감염을 통제할 수 없다면 제왕절개, 항암치료, 장기이식 같은 고난도 의료행위는 물론, 충치 치료나 단순 외상 처치조차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감염 관리가 불가능해지는 순간, 우리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로 되돌아가게 된다.
내성은 인명 피해뿐 아니라 경제적 충격도 동반한다. 내성균 감염 환자는 입원 기간이 길고, ‘최후의 보루’ 항생제를 사용해야 해 치료비가 급증한다. World Bank은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으로 전 세계 GDP가 매년 1~3.8%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 맞먹는 충격이다.

요양병원과 1차 의료, 끊어야 할 ‘내성 고리’
국내 상황은 더욱 구조적이다. 고령 환자가 밀집한 요양병원은 다제내성균 확산의 거점이 될 위험이 크다. 그러나 현재 ASP는 대형병원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1차 의원급의 높은 처방률과 요양병원의 관리 공백이 지속된다면, 상급종합병원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내성 관리의 사각지대를 줄이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해외의 ‘공격적 방어’
해외 주요국은 항생제 내성을 ‘국가 안보’ 수준의 과제로 다룬다.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은 처방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 의료진의 자율 개선을 유도하고, 국민에게 항생제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한다.
미국은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CDC)를 중심으로 병원의 항생제 관리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보험·재정 정책과 연계해 실질적 변화를 끌어낸다. 규제와 인센티브를 함께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의료 소비자의 책임
항생제 내성은 의료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기에도 항생제를 요구하거나, 증상이 호전됐다고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는 행동은 내성균에게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복용을 중단하면 살아남은 균이 내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치료 선택지를 줄인다. 항생제는 개인의 약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자산이다.

항생제 내성 대응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ASP를 중소병원과 요양병원까지 확대하고,심평원 평가는 단순 처방률을 넘어 내성균 발생률과 연동하는 질적 고도화가 필요하다.특히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속적 캠페인이 병행돼야 한다.
이 세 축이 함께 작동하면 우리는 항생제 내성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 성과가 단순한 논문 발표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전반의 체질 개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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