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부분을 오로지 의사로서 살아온 내가 뒤늦게 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의과대학까지 세운다는 것은 내 육영사업에 있어서 대단원을 이룬 것과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의료와는 궤도를 달리하는 육영에 몰두해왔던 내가 비로소 평생 쌓아온 의료 지식과 병원 운영의 경험을 교육에 접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1994년 9월 교육부로부터 숙원사업이었던 의학과와 간호학과의 인가를 받았다. 그 해 초에 의과대학 설립 신청을 해서 9월에 50명의 정원으로 인가를 받은 것인데 나로서는 평생 소원하던 바를 이룬 셈이다. 의과대학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십수 년씩 걸려 설립 허가를 받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대학은 단 한번에 그 절차를 마친 것이다. 당시 내가 청와대와 어떤 연결선이 있어서 쉽게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받기도 했으며, 운이 좋아서 그랬거니 하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해 의과대학 설립 허가를 위해 전국에서 20개 대학이 신청하여 경합을 벌였는데 4개 대학만이 허가를 받았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 대학이 평가 점수에서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運)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결실이 아닌 것이었다. 신문 지상에서는 어느 대학에 의대가 인가된다는 등 예측 기사가 난무하여 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했는데 막상 정식으로 인가를 받고 보니 전 교직원들이 모두 기뻐하였으며, 우리 대학의 위상도 한층 올라가게 되었다.
의과대학 인가를 축하하는 논산시민들의 기념식에서 김희수총장
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 인가를 받은 후 어느 날 내가 논산역에 내리니 역 광장에 ‘경축 건양의대 신설’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논산 시장님을 비롯한 지역 기관장님들과 많은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학과 설립 인가를 축하하는 시민 기념모임을 내가 논산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계획해 놓은 것이었다. 나는 인사말에서 우리 대학의 의학과 인가는 교육부에서 발표한 대로 평점을 잘 받아 인가된 것이니만큼 본인의 힘이 아니라 오직 열심히 해주신 총장님과 교수님들의 노력이란 점을 강조하였다. 그날 논산 훈련소의 밴드까지 동원되어 교가를 연주하는 등 경축 분위기를 한층 돋웠으며 논산 지역 유지분들이 진심 어린 축사를 해 주시는 등, 나는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1995년 3월 2일 제5회 입학식에 드디어 의학과 50명과 간호학과 40명이 입학함으로써 의과대학이 첫발을 내디뎠다. 초대 학장으로는 연세대학 의과대학장을 역임했던 강두희 교수(생리학)께서 취임했다. 학생들이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최신 의학 실험실습 시설과 의학전자도서관 등 지원시설을 갖추어 놓고, 의학과의 교육 목표를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생명을 가장 존귀하게 여길 수 있는 진정한 의료인의 육성”에 두었다.
의학과는 2001년 2월에 첫 졸업생 32명을 배출했으며, 이 때 졸업한 첫 신입생들이 지금 건양대병원에서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2010년에는 의사고시 수석도 배출했고 신입생의 입시 성적도 전국 2위를 기록한 바 있으며, 의사고시에서도 매년 100%에 가까운 합격률을 내고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의학과는 논산 반야캠퍼스의 자연과학대학에서 수업을 받다가 1998년 3월에는 의학관을 지어 이전하였고, 2000년 건양대병원이 개원하면서 병원 건물 뒤편 산 밑에 660평 규모로 연구동 건물을 지어 의학과와 간호학과 학생들을 위한 강의실과 의학도서관, 교수연구실 등을 완비했다. 그러다가 2007년 대전 관저캠퍼스가 완공되면서 명곡의학관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과 전문의로서 한국 의료계의 선두주자임을 자부해온 나로서는, 나보다 더 실력 있고 훌륭한 의사를 내가 설립한 대학에서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 육영사업에 뛰어든 나에게 또 한번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