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iRBD)가 파킨슨병이나 치매와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기억력과 주의력 등 주요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팀(제1저자 홍정경 교수)은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 162명을 평균 7.7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이행하지 않은 환자에서도 인지기능 저하가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렘수면행동장애는 꿈의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질환으로, 수면 중 소리 지르기, 주먹질, 발차기 등의 증상을 보인다.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 신경퇴행성질환의 가장 강력한 전조 증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신경학적 원인이 없는 경우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로 진단된다. 그러나 장기간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환자들의 인지기능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그동안 매우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최소 5년 이상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상태를 유지하면서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환자 162명을 대상으로 총 318회의 신경심리학적 평가 결과를 분석했다. 인지기능은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시공간기능 ▲언어기능 등 5개 영역으로 구분했으며, 결과는 연령·성별·학력을 보정한 ‘z-점수’로 환산했다. 일반적으로 z-점수 -1.5 이하는 유의미한 인지 저하로 판단한다.
분석 결과,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들은 주의력·작업기억력과 기억력 영역에서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인 저하를 보였다. 특히 처리속도와 주의력, 작업기억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숫자-기호 연결(Digit Symbol)’ 검사에서 매년 평균 z-점수가 0.084씩 감소하며 가장 가파른 하락을 나타냈다. 이는 조기 인지 변화를 감지하는 데 가장 민감한 지표로 확인됐다.
기억력 영역에서도 언어 기억력은 매년 평균 0.054, 시각적 기억력은 0.037씩 감소해 장기간 누적될 경우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상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뚜렷했다. 남성 환자(116명)는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등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한 인지 저하를 보인 반면, 여성 환자(46명)는 ‘숫자열 기억(Digit Span Forward)’과 ‘숫자-기호 연결’ 검사 등 일부 항목에서만 제한적인 저하가 나타났다.
윤인영 교수는 “여성 환자들이 뇌 손상에 대한 회복력이 더 높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비정상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는 속도가 더 느릴 가능성이 있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모니터링 전략과 맞춤형 관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10년 이상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장기 안정군’ 환자 33명을 별도로 분석한 결과, 이들 역시 전체 환자군과 유사하거나 일부 검사에서는 오히려 더 가파른 인지 저하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장기 안정 환자는 신경퇴행 속도가 느릴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 배치되는 결과다.
홍정경 교수는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에서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인지기능 저하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를 통해 명확히 확인됐다”며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진단되지 않았더라도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다면 정기적인 인지기능 검사와 지속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 권위의 수면의학 국제학술지 ‘SLEEP’(IF 4.9) 최신호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