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가격경쟁을 통한 의약품 저가구매를 촉진할 목적으로 도입된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가 실제로는 대형병원의 의약품 가격 후려치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형병원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 제공 문제와 더불어 정상적 시장거래를 저해하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이 입수한 병원-제약·도매업계 간 의약품 계약 관련 문서들을 보면, 일부 대형병원들이 2월 1일 재시행되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저가구매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기존 의약품 계약을 파기하고, 제약회사나 도매업계에 약값을 더 내려서 견적서를 내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병원의 경우 기존 계약 파기 후 약가의 25%를 깎아서 입찰할 것을 명기하여 공문을 보냈고, 다른 사립대병원은 무려 50%나 인하하여 입찰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제약·도매업체가 병원의 요구대로 입찰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입찰을 제한하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지난 1월 대형병원의 약값 후려치기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가 2월 1일부터 재시행되기 때문이다.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는 의료기관이 약을 살 때 건강보험 등재가격보다 싸게 사면, 저가구매 차액 70%를 인센티브로 준다. 병원들은 저가구매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기존 계약마저 파기하고 의약품 가격 인하를 제약·도매업체가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는 대형병원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행 16개월 동안 최대 1600억원의 손실만 낸 것으로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김성주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출자료를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약가인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은 최대 1878억원이지만 의료기관 인센티브로 2339억원이 지출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최대 1601억원의 손실만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형 실거래가 관련 건강보험재정 영향분석> (단위 : 억원) | ||
요양기관 인센티브 지급액 |
약가인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 |
건강보험 재정 영향액 |
2,339 |
738~1,878 |
-464~-1,601 |
또한 제도시행 16개월 동안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에 참여한 요양기관은 10곳 중 1곳에 불과하며, 요양기관에 제공된 인센티브 91.7%인 2143억원은 대형병원에 집중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122억 7천만원, 서울대병원 122억 6천만원, 삼성서울병원 78억 7천만원 등 대형병원 쏠림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가 요양기관의 저가구매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모형인 탓에 초저가 낙찰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김성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의약품 1원 낙찰 현황>에 따르면, 2010년 5254개이었던 1원 낙찰 요양기관이 2013년에는 8025개로 53.8%가 증가했다. 또한 동 기간 1624개였던 의약품수도 2013년에는 2170개로 33.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의약품 1원 낙찰 현황>
‘09.10~’10.9 |
‘10.10~’11.9 |
‘11.10~’12.10 |
‘12.11~’13.12 | |
요양기관수 |
5,254 |
6,175 |
7,082 |
8,085 |
품목수 |
1,624 |
2,466 |
2,924 |
2,170 |
제약사수 |
171 |
181 |
190 |
182 |
제약사 1개소당 품목수 |
9.5 |
13.6 |
15.4 |
11.9 |
주 : 1. ’10.10월 ~ ’13.12월 심결기준
2. 산소, 퇴장방지의약품 원외처방시 사용장려비용 청구 제외
다수의 대형병원들이 1년치 의약품을 단돈 1원, 5원 등 초저가로 살 수 있는 이유는 병원의 의약품 처방목록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에 따라 제약회사, 도매업체의 사활이 걸렸기 때문이다. 병원 처방목록에 들어가지 못하면 약국 등 원외처방 의약품 판로까지 막혀 사실상 회사문을 닫을 수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공급 약값(원내처방)은 포기하고, 원외처방 판매만으로 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대형병원 약가 후려치기 관행으로 인해 약국 등 원외처방으로 의약품을 구매하는 대다수 환자가 병원 입원환자(원내처방)가 소비하는 약제비 대부분을 부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외처방 환자들을 역차별하고, 대형병원 이용 국민과 미이용 국민간 형평성에 반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김성주 의원은 “건강보험 재정에 손실을 야기하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시행을 복지부가 고집하면서 의약품 시장에서는 약가 후려치기와 같은 반시장적 행위, 슈퍼갑의 횡포가 더욱더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김성주 의원은 “병원은 제약회사, 도매업체에게 초저가 공급을 요구할 수 있고, 이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제약·도매업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병원은 거래상 우월한 위치에 있어 약값 후려치기와 같은 비정상적 거래행태는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또한 1원 낙찰과 같은 초저가 요구를 통해 제약회사의 가격결정 권한을 제약하는 병원의 행태는 경쟁을 통한 약가인하라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성주 의원은 “현재 보건복지부, 병원-제약-도매업계가 협의체를 만들어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이미 시장에서는 가격 후려치기 등 반시장적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복지부가 조속히 합리적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지속가능하고, 경제주체들이 수용가능한 약가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