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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총장 자서전/ 1 / 60평생 모은 재산 고향에 투자, 가치와 보람 느껴


사 고(社告)

 


오늘부터 ‘인터넷자서전’이 연재됩니다.

 


지난 1월 창간 이래 의료, 제약, 식품 등 보건 분야를 신속하고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성원을 받아온 메디팜헬스뉴스가 오늘(12일)부터 ‘인터넷 자서전’란을 본격 가동, 연재합니다.

 

한 회사나 기관, 또는 단체가 꾸준히 성장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느냐는 오로지 그 회사나 기관단체를 창업한 오너, 내지는 CEO의 사물과 비전을 내다보는 혜안과 경영철학, 그리고 역량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메디팜헬스뉴스가 새로이 기획한 ‘인터넷자서전’은 제약, 병원, 식품, 화장품 등 국내 보건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그 회사나 기관단체의 창업에서 현재까지 걸어온 성장과정을 다룸으로써 이 분들의 경영철학, 인생관, 가치관 등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은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으로 건양대학교병원과 건양중․고 및 건양대학교를 설립, 우리나라 지역 의료 및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김희수총장의 스토리를 내보냅니다.

 

서울 영등포 김안과병원 설립을 시작으로 충남 논산에 건양중․고 및 건양대학교, 대전에 건양대학교병원을 세운 김총장은 올해 83세의 나이인데도 왕성한 체력과 정신을 바탕으로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분입니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4시에 병원에 도착, 병동을 돌아본 뒤 오전 10시께는 대학교로 출근, 일상 업무를 보고 있으며, 관내 행사에 참석하거나 외국에 있는 자매대학교와의 업무협의차 자주 해외에 나가는 등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부권 최우수의료기관으로 평가받는 건양대학교병원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범사학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건양대학교를 설립한 ‘김희수총장스토리’는 김총장이 걸어온 이야기와 함께 생활 및 교육철학, 인생관, 가치관등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됨으로써 독자여러분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의 애독과 함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제1편김안과에서 고향에 건양대 설립까지

 

 

 결자해지의 자세로 -제4대 총장 취임

 건양대학교는 30여 년 의사로서 한 길을 걸어온 나를 본격적인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모체이다. 인재양성의 큰 뜻을 품고 건양학원을 설립한 후 이십여 년 간 이사장으로서 한걸음 물러나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지내왔다. 그동안 중ㆍ고교를 세워 뒷받침하면서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가르침을 통감했으며, 60평생 모은 재산을 고향과 교육을 위해 쓴다는 것이 참으로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대학 설립을 꿈꾸게 되었고, 파란만장한 인가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고향 논산에 건양대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건양대가 작은 소도시인 논산에 자리를 잡으려 하자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다. 대도시에 좋은 곳이 많은데 하필 학생 모집이 어렵고 환경도 열악한 곳을 선택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고향이 그렇게 열악한 곳이라면 당연히 그곳에 학교를 세우는 게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다. 지방의 훌륭한 인재들도 누군가는 잘 가르쳐서 사회의 동량으로 떳떳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대학 설립을 결정하고 나서 나는 밤을 새워가며 학교 설립 계획을 짜고, 발바닥이 닳도록 여러 교육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벤치마킹에 나섰다. 교사 건축과정에서도 설계는 물론 벽돌 한 장 한 장까지 꼼꼼히 챙겨가며 온 정성을 쏟았다. 제대로 길도 닦지 못한 채 첫 입학식을 치렀지만,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규모가 커지고 의과대학도 설립되는 등 기틀이 잡혀갔다. 1991년에 10개 학과 400여 명의 규모로 시작했으나 10주년 때에는 42개 학과 7,000여 명의 대학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해 처음으로 의학과 1회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의사국가시험에서도 32명 중 31명이 합격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의사에서 교육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지방 대학 위기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건양대병원이 개원하여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대학 쪽에서는 이듬해 입시상황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질 것이며, 자연스레 지방대학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휩쓸고 있었다. 실제로 영호남의 일부 대학들에서는 신입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여 학교 운영이 어렵다거나, 경영 악화로 매물로 내놓은 대학이 있다는 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4~5년 동안 병원 건립에 총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대학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지방대학의 위기라는 격랑을 맞아 건양대도 좌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마침 신대현 총장님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재단 이사회에서 직접 총장을 맡아 해볼 것을 나에게 권유했다. 대학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설립자의 열정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사회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설립자가 직접 경영에 나서야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겼던 때였지만 나는 나이가 많아서 못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욕도 있었다. 단지 의사로서 육십 평생을 살아왔고 당시 김안과병원과 건양대병원에서 현역으로 진료하고 있었기에 환자와 멀어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기에 많이 망설여졌다.
그때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고사성어가 상기되면서, 내가 설립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만 위기에서 벗어나면,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래서 급한 불만 끄자는 생각에 총장 임기도 4년에서 3년으로 줄여 달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총장이라는 짐을 10년이 넘도록 짊어지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4대총장 취임

이렇게 하여 건양대가 개교 10주년을 맞이한 2001년 1월에 나는 제4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취임식을 앞두고 처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처럼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목표 앞에 패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실무 경험이 없는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상학관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장에 서자 눈앞의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내가 세운 이 대학을 어떻게든 한국의 명문으로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두 어깨에 얹히는 것을 느꼈다.

취임사에서 나는 21세기 새로운 교육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학사 행정의 모든 측면에서 ‘질(質)의 향상’을 도모하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실력 연마와 함께 대학생활의 낭만과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쓸 것임을 공표했다. 교직원들에게는 부단한 자기 개발을 당부하면서 학교 발전과 학생지도,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책임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이러한 짐을 함께 짊어지고 나갈 것임을 여러 내외빈과 교직원 앞에서 밝혔다. 그리고 논산과 대전에 양대 캠퍼스를 구축하고, 논산 캠퍼스는 IT 관련 학과를 집중 육성시키고 대전 캠퍼스는 의과대학 및 의료 관련학과를 중심으로 한 생명공학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총장 취임 당시 본관은 경상학관이었는데 2층에 이사장실과 총장실이 있었다. 총장이 되고나서 바로 옆방으로 옮겨 앉았지만, 총장의 역할은 이사장에 견줄 바가 못 되었다. 옆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해야 할 일도 많았고 돈을 써야 할 데도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총장직을 수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계획이 있으면 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돈이 필요한 데는 즉각 결재하여 모든 일이 빨리 진행되도록 했다. 기획에서 실행까지 시간이 단축되니, 그만큼 학교 시스템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실적도 눈에 빨리 들어왔다. 느슨했던 조직이 팽팽하게 조여지면서 긴장감과 더불어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사장으로는 나의 죽마고우이자 우리 대학 설립에 많은 애를 써준 정석모 전 내무장관이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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