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규모 약가 인하를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편안은 처음에는 제약기업 경영 부담의 문제로 인식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되는 현실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약가 인하의 충격은 이미 경영진의 손익 계산서를 넘어, 생산라인과 고용 현장, 그리고 노동자의 생존 문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지난 22일 경기도 화성 향남제약공단에서 열린 ‘정부 약가 개편안 관련 현장 간담회’는 이러한 위기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제약기업 경영진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위원장단, 공장장 등이 한자리에 모여 약가 정책이 가져올 파장을 함께 우려했다는 점에서 이번 간담회는 상징적이다. 약가 인하 문제가 더 이상 ‘기업의 이익’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존속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약산업은 여타 제조업과 다르다. 고도의 숙련도를 갖춘 GMP 전문 인력이 생산과 품질을 지탱하는 구조이며, 한 번 무너진 생산 기반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 현장에서 우려하는 신규 채용 중단, 생산라인 축소, 구조조정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다. 이는 곧 품질 관리 역량의 약화로 이어지고, 필수의약품 생산 위축과 의약품 공급 불안이라는 국민적 위험으로 직결된다.
이번 간담회에서 경영계와 노동계가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다. 노연홍 비상대책위원장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한 데 이어, 노동계 역시 약가 제도 개편이 고용 불안과 직결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약산업이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산업’이라는 노동계의 발언은, 약가 정책을 단순한 재정 절감 수단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지점은 정책의 파급 효과가 가장 약한 고리부터 현실화된다는 점이다. 수익성이 낮은 국산 필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생산이 위축되면, 결국 현장은 먼저 멈춘다. 그 결과는 고가 수입 의약품 의존 확대, 공급망 불안, 보건안보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 손실 3조6,000억 원, 종사자 12만 명 중 10% 이상 실직 가능성이라는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약가 제도 개편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와 방식이 문제다. 숫자 중심의 일방적 인하 정책은 단기 재정 절감이라는 착시만 남길 뿐,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과 국민 건강을 동시에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함께 위기를 호소하는 지금의 상황은 정부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신호다.
약가 정책은 산업 정책이자 노동 정책이며, 동시에 보건안보 정책이다. 이제 정부는 현장의 경고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일방적 약가 인하를 멈추고, 산업과 노동, 국민 건강을 함께 고려하는 전면적인 재검토에 나설 때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약가 개편은 ‘재정 개혁’이 아닌 ‘산업 붕괴의 방아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