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추석 같은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그만큼 평소엔 눈에 띄지 않던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기억력·행동 변화를 알아차리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날짜를 헷갈리고, 평소와 다른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나이 탓’으로 넘겨도 되는 걸까. 전체 치매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명절이 오히려 조기 발견의 기회가 될 수 있다.
■ 명절 풍경 속 ‘이상 신호’
“아까도 말했잖아.”
“이게 어디 있더라?”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명절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말들이지만, 이런 장면이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된다면 그냥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에는 최근 기억부터 흐려진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잊고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거나, 물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멈추는 모습이 흔하다.
여기에 날짜·요일을 헷갈리거나, 익숙한 친정집·고향집에서도 길을 헤매는 모습이 더해질 수 있다.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우울, 불안, 짜증, 의심 같은 성격 변화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수개월 이상 이어지고 일상에 영향을 준다면 단순한 노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 알츠하이머병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국내외 연구를 종합하면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약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이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한 번 시작되면 서서히 진행되지만, 조기에 발견해 치료와 관리를 시작하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 진단의 출발점은 가족의 ‘느낌’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검사실보다 가족의 관찰에서 시작된다.
“언제부터, 어떤 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에서는 면담과 진찰,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인지기능을 평가하고, 혈액 검사와 뇌 MRI로 다른 질환 가능성을 함께 살핀다. 필요할 경우 아밀로이드 PET 검사를 통해 뇌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직접 확인해 진단 정확도를 높인다.
■ 치료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속도 조절’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목표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기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핵심이다.
현재 사용되는 약물치료는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실제 연구에서도, 치료를 받은 환자는 요양시설 입소 시점이 늦춰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에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치료제가 도입되며 초기 환자 치료에 새로운 선택지도 생겼다.
불면, 초조, 공격성 같은 행동 증상은 약물 외에도 생활 환경 조정과 비약물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지역 치매안심센터의 인지훈련 프로그램도 초기 단계에서 도움이 된다.
■ 명절이 끝난 뒤에도 지켜야 할 예방 수칙
완치가 쉽지 않은 질환인 만큼 예방과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네 가지 생활 원칙을 강조한다.
뇌혈관을 지키자
고혈압·당뇨·비만을 관리하고 금연하기. 특히 중년기 혈압 관리는 치매 예방의 핵심이다.
과식·과음을 피하자
특정 ‘치매에 좋은 음식’보다 적정 칼로리와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활동을 멈추지 말자
걷기 같은 가벼운 운동을 주 3회 이상, 가능하면 매일 실천한다.
기쁘게 살자
우울과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인지 건강에 중요하다.
■ 전문가 조언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 저하나 행동 변화는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선택지는 줄이며, 반복 질문에는 차분하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달력, 시계, 메모, 사진 같은 환경적 단서는 혼란을 줄이는 데 유용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될 때는 미루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해 정확한 평가와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