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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16/기술제휴의 필요성과 성수동 공장

아직 품목이나 생산량이 미미한 보령제약이 지나치게 큰 규모의 공장을 짓는 게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규모가 결코 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장차 본격적으로 외국과의 기술제휴에 들어갈 경우 어느 정도의 생산능력이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60년대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의약품 생산면에서는 그런대로 활기를 띠고 있었지만 연구와 개발면에서는 아직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 같은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중의 하나가 바로 외국과의 기술제휴였다. 물론 정부차원에서 국산의약품 생산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 기술이나 상표가 그 동안 외제 선호로 일관해온 소비자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러한 측면에서도 외국기술의 도입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1959년 국내 최초로 한독약품(韓獨藥品)이 독일과 기술제휴를 맺은 이래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본격적인 기술제휴 붐이 일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가 완제품에 가까운 원료공급 형태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술제휴로 생산된 약품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크게 높았다.
따라서 이후 국내 제약업체들이 점차 영세성을 벗어나는 등 기술제휴를 통해 약업계의 전반적인 발전이 가능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나아가 기술제휴는 한 차원 높은 합작투자 여건을 조성하여 의약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예로 1964년에 최초로 외국과의 합작회사로 재탄생한 한독약품의 경우 원료의약품의 국산화에 기여한 공이 지대하였다.


나 또한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기술제휴에 임할 것인지 고심 중이었다. 그리고 기술제휴에는 그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이내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시설이나 규모로는 기술제휴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개선되어야 할 문제는 시설이나 영업조직 등 전반적인 측면에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공장의 규모였다. 살림집에 곁붙여서 만들어 놓은 연지동 공장의 시설이나 규모로는 외국 기술의 도입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대지 691평, 건평 190평의 2층 건물로 지어진 성수동 공장.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공장에 속했다.


새로운 공장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는 곧바로 부지 확보에 나섰다. 옛날 보령약국을 개업하기 전에 그랬듯이 나는 적합한 공장터를 찾아 서울 외곽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 확보하게 된 공장부지가 바로 성수동(聖水洞) 2가 302의 8번지였다.


당시 성수동은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서도 외진 곳에 속했다. 대부분 논과 밭으로 된 경작지였고, 교통수단도 충분치 못해 시내에서 이곳까지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공사에 착수한 것은 1966년 10월이었는데 대지 691평에 건평 190평의 2층 건물 규모였다. 이런 정도의 공장이라면 당시 어떤 제약회사의 공장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었고, 단지 공장크기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큰 편에 속했다. 이 때문에 아직 품목이나 생산량이 미미한 보령제약이 지나치게 큰 규모의 공장을 짓는 게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규모가 결코 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장차 본격적으로 외국과의 기술제휴에 들어갈 경우 어느 정도의 생산능력이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공장이 준공된 것은 공사 6개월만인 1967년 4월이었다. 비록 인근에 공장 하나 없는 논밭 사이에 단촐하게 들어선 공장이었지만 이제 보령의 이름으로 새로운 제약인의 꿈을 펼칠 소중한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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