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70여년 남짓 되는 우리나라 전공의 수련과정 역사에 있어 기억에 남을 한 해가 될 듯하다. 우리 앞에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필수의료의 붕괴와 비수도권 지방의료의 몰락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와중에, 전공의 정원을 의료계 및 전문과목학회의 의견과 관계없이 강제로 수도권-비수도권 비율을 5:5로 조정해버리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 결과, 소위 인기과의 경우 어느 정도 지방으로 지원 인원이 분산되는 효과를 보았지만,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주요 과목은 지방은 지방대로 지원이 없고, 서울-수도권은 지원을 하고 싶어도 정원이 없어 못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되살펴보면, 지방 국립대 병원을 비롯하여 비수도권 병원에서는 5:5 정원 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데 반하여, 서울 주요 대학병원, 대형병원은 필사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었는데 결국 숨겨진 불편한 진실은 전공의를 수련과 교육의 대상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 현장에 투입하고 당직 근무를 시키는 값싼 노동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이와 같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공의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공이 많이 드는 일인지 잘 준비된 교육과정과 지도전문의의 탁월한 열정이 있지 않고서는 전공의 정원을 배정해도 손사래를 치고 사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때이다.
전공의가 제대로 된 수련을 받고 필수 역량을 갖춘 전문의로 양성되려면 명문화되고 체계화된 수련교과과정과 함께 병동-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모두 아우르는 현장 실제 환자 경험, 그리고 이를 현장에서 직접 체크하고 평가하는 지도교수 등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최근 여러 전문과목학회에서 전공의 수련과정을 역량중심평가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완료하여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시범사업까지 계획 중이다.
대표적인 필수의료과목인 외과의 경우 매우 오래 전부터 현장, 역량중심평가를 도입, 완성도 높은 수련체계를 갖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공의 하나하나에게 위임 가능한 전문 역량을 가르치고 현장에서 평가해야 하는 과정부터 지도전문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교수나 전문의가 받아야할 교육 등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 정도면 전공의를 제대로 가르치고 평가하며 전문의로 키워내는 일을 맡은 수련병원과 지도전문의에겐 엄청난 책임과 업무 로딩이 지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과 수련교과과정에 제시된 내용들이 과연 빅5 병원들처럼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국에서 몰려든 고난도 수술, 치료, 시술을 하는 곳에서 수련이 잘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오히려 교수, 전문의 및 세부전문의를 지원하는 펠로우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이들과 같은 4차 병원에는 더 적절하고, 전공의 수련은 그보다는 한 단계 아래 규모 수준의 기관을 주로 지정하고 정부의 지원과 함께 철저하게 관리된 지도전문의를 갖춘 곳에서 주로 맡으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수련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안해 본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울-지방 수련 분산도 이루어지고 장기적으로 망가진 의료전달체계의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의대 정원을 몇 명으로 늘리는가에 대해서 정부와 의료계가 다르고, 각 의대마다 입장이 다르듯이 향후 필요한 전문의 숫자와 이에 따른 적절한 전공의 정원에 대해서도 26개 전문과목학회마다 모두 의견이 다르다. 2013년부터 추진되어온 전공의 정원정책에 따라 전체 전공의 수가 의대 졸업생 수와 맞추어 3,200명 내외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공의 정원 증감은 전문과목별 제로섬 게임 양상이어서, 어느 한 분야에서 숫자를 일방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다년간 지원 미달인 전문 과목 정원을 일괄적으로 줄이면서 최근 수요가 급증한 과목에 정원 배정을 늘렸는데, 결과적으로는 필수의료가 일컬어지는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정원이 줄어드는 아쉬운 현상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남짓 경직된 과간 정원 조정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만큼 향후에는 매년 상황 추이에 따라 유기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고, 아울러 올해 나타났던 서울-지방 강제 정원 조정의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보다 전향적인 타협과 조정을 위해 의견을 모아야한다. 전공의 관련 업무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체제가 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대한의학회 수련위원회 중심의 정책 결정, 진행, 대관 업무가 약화되고,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통한 탑다운 방식의 의사 진행, 정책 입안이 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의료사안에 있어 누구보다 전문적인 식견과 데이터를 갖고 있는 26개 전문과목학회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합리적인 의견과 대안을 상향식으로 정부에 제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결론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련교과과정 체계화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공의를 바라보는 교육자, 경영자의 시선을 제고하며, 의대 정원 조정과 함께 각 과목별, 과목간 전공의 정원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아감에 있어 대한의학회와 산하 전문과목학회들의 대안 제시와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글쓴이:이 승 구 전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 연세의대 영상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