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 유래 의약품은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활용해 온 치료 자원이다. 식물, 미생물, 해양생물 등 자연에서 얻은 물질은 오랜 경험을 통해 효능과 안전성이 축적돼 왔고, 현대 의약학의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신약 개발의 중요한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을 준공한 것은 국내 천연물의약품 산업의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그동안 국내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우수한 연구 역량과 풍부한 생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질 관리 기준의 표준화 부족, 과학적 근거 축적의 한계, 규제 대응 역량 미흡 등으로 산업적 확장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연구 성과가 제품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번에 준공된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로, 천연물의약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천연물의약품 개발의 핵심은 ‘과학화’와 ‘표준화’다. 천연물은 원료의 특성상 성분 변동성이 크고, 재배·채취·가공 조건에 따라 품질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성분 분석, 독성 평가, 위해물질 모니터링 등 고도의 품질 관리 체계가 필수적이다. 연구원이 추진할 품질검사, 위해물질 감시, R&D 지원, 전문인력 양성 기능은 천연물의약품을 경험적 치료 자원에서 과학적 의약품으로 끌어올리는 토대가 될 것이다.
해외 사례는 이러한 방향성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독일은 대표적인 천연물의약품 강국으로, 허브 의약품과 식물성 의약품을 현대 의약 체계 안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국가다.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식물성 의약품의 유효성·안전성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임상 근거 축적과 품질 표준화를 통해 의사 처방이 가능한 의약품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천연물의약품은 독일 의약시장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일본 역시 한약(캄포) 제제를 제도권 의약품으로 정착시켜 의료 현장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천연물의약품을 전통이나 보완의 영역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과학적 검증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산업’으로 육성했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풍부한 생물자원과 우수한 연구 인력을 바탕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이 그 중심에서 연구개발과 품질관리, 규제 과학을 연결하는 허브로 기능한다면 국내 천연물의약품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준공이 단순한 시설 완공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연구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투자, 산·학·연 협력 강화, 기업의 제품화와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실질적 성과 창출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중소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들이 천연물 연구 성과를 임상과 허가, 상용화로 연결할 수 있도록 촘촘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의 출범은 국내 천연물의약품 산업이 ‘가능성의 단계’를 넘어 ‘성장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디딤돌 위에 얼마나 단단한 도약의 구조를 쌓아 올리느냐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천연물의약품,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K-천연물의약품 산업을 향한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