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0여 개국에서 10년 이상 사용돼 온 삼차원뇌파(SEEG) 전극이 국내에서는 허가 지연으로 1년 넘게 도입되지 못하면서, 수백 명의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차원뇌파(SEEG) 전극은 뇌전증 발생 부위를 정밀하게 확인할 뿐 아니라, 전극을 통해 고주파 열치료(Radiofrequency Ablation, RFA)를 시행할 수 있는 뇌전증 표준 치료 장비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식약처 허가가 지연되면서, 삼차원뇌파 검사를 통해 병변을 확인하고도 고주파 열치료를 시행하지 못한 채 전극을 제거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은 “치료가 가능한 상황에서 규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라고 호소하고 있다.
고주파 열치료의 효과는 이미 다수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2025년 국제학술지 리뷰 논문(42개 연구, 188명 분석)에 따르면, 약물 난치성 측두엽 뇌전증 환자에게 SEEG 기반 고주파 열치료를 시행한 결과 46.3%에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됐으며, 부작용 발생률은 3.8%에 불과했다.
2022년 리뷰 논문(20개 연구 분석)에서도 환자의 62%에서 유의미한 발작 감소 효과가 확인됐고, 뇌 병변이 있는 경우 치료 효과는 71%에 달했다.
또 다른 2025년 리뷰 논문(33개 연구 분석)은 난치성 소아 뇌전증 환자에서 SEEG 기반 고주파 열치료 시행 시 90%에서 발작이 50% 이상 감소했으며, 71%는 발작이 완전히 조절됐다고 보고했다.
의료계는 이러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국내 환자들만 치료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전신 강직간대발작으로 인한 낙상, 외상, 돌연사(SUDEP) 위험이 일반인보다 최대 50배 이상 높은 고위험군이다.

홍승봉 뇌전증지원센터장(성균관의대 명예교수)은 “삼차원뇌파 검사의 진원지인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 선진국에서는 검사와 치료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은 진단만 하고 치료를 못하는 유일한 나라”라며 “한국에 대체 가능한 전극이 없는 상황에서 허가를 막는 것은 사실상 환자 생명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식약처 허가가 하루 지연될 때마다 12명의 젊은 중증 뇌전증 환자가 더 위험에 노출된다”며 “1년 전에만 허가가 이뤄졌어도 200300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식약처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사안의 긴급성과 생명 직결성을 고려해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홍 교수는 “식약처 직원들이 뇌전증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무조건 막는 규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을 살리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